I. 머리말
II. 미륵신앙의 수용
III. 미륵신앙의 전개
IV. 미륵신앙의 성격
V. 맺음말
요약
백제의 불교는 중국 남조와의 외교관계 속에서 적극적으로 수용되었을 것으로 본다. 그리고 백제가 갖는 북조적인 성격 또한 남조를 통해 유입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미륵신앙 또한 이러한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을 것으로 본다.
백제 사비시대의 미륵신앙은 지역을 달리하면서 그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특징은 미륵신앙의 중요성을 부각시켜 준다. 응진지역의 미륵신앙은 수원사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그리고 웅진지역의 미륵신앙은 귀족세력과의 조화로운 관계 속에서 전개되고 있는 것을 보인다. 이러한 모습은 토착신앙과 연결된 미륵신앙의 모습에서 찾아진다. 그리고 서산마애불에서도 그 모습이 살펴진다.
백제의 미륵신앙은 사비지역에서 왕흥사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모습도 찾아진다. 여기서 왕흥사는 미륵신앙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왕흥사의 미륵신앙은 웅진지역과 익산지역의 미륵신앙과는 차별화된 가운데 전개된다. 이는 무왕이 왕흥사를 찾아 행향하고 이를 통해 왕권의 강화를 꾀하고 있는 것에서 살펴진다. 이러한 왕흥사의 미륵신앙은 의자왕 말기에 보이는 기록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호국사찰로서의 기능도 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백제의 미륵신앙은 무왕대 창건된 미륵사를 통해서도 그 특징을 유출해 볼 수 있다. 미륵사의 창건은 상생신앙과 하생신앙이 동시에 강조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런데 무왕은 상생신앙적인 요소보다는 하생신앙적인 요소를 더 강조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모습은 왕권 중심의 정국운영의 일면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이는 미륵사가 창건되는 과정에서 살펴진다.
백제의 미륵신앙에는 정토신앙적인 요소도 담겨 있다. 그리고 이러한 정토신앙은 윤희와 연결되어 사회적으로 투영되어 있었던 것으로 본다. 이는 이 당시에 조성된 불상명에서 찾아진다. (필자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