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는 큰 나라였을 뿐 아니라 3국 중 가장 뛰어난 문물을 지니며 살아온 海洋대국에다 중국대륙이 거의 백제영토였다는 주장들이 무성하다. 그러나 정작 중국의 어느 지역, 어느 年代를 통치했느냐 하는 질문앞엔 명확한 해답을 주지 못하고 있다. 백제는 어느곳에서 起原, 어떻게 반영을 누렸고 그 문화의 종착지는 어디냐 하는 분명한 해답은 있어야 한다. 삼국시대 백제, 신라, 고구려 3국은 다같이 중국대륙의 영향을 받았으나 모방과 답습에 머물지 않고 自己化하는 슬기를 발휘하여 찬란한 문화의 꽃을 피웠다. 칠백년의 시공을 찬연하게 살다 간 백제는 파국을 맞이함에 있어서도 屈從보다는 차라리 玉碎쪽을 택한 셈이다. 이와같은 기질은 오늘에 와서 순국정신․선비정신 등과 맥을 같이하며, 백제문화는 당시 아스카문화로 승화하여 섬나라 일본에 그 꽃을 피웠다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백제를 알려거든 源流인 공주나 부여보다 일본에 가는 길이 빠르다고 말하는 이가 있지만 다음과 같은 대목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원래 문명의 발자취는 대륙에서 잉태되고 그것이 반도 또는 三角洲를 거쳐 대륙으로 억류하는 생리를 지닌다. 이를 가리켜 문화의 同時性 또는 문화의 순환성이라 부른다. 문화는 항시 원류에 대해 향수 같은 걸 갖는 법이다. 인류는 원류에 끊임없이 애정을 갖고 또 이를 고향으로 삼는다. 이런 시각에서라면 원류인 공주 부여보다 일본의 교토와 나라의 유적의 규모나 構圖에 있어 크다해서 우리가 굳이 위축되거나 자학 할 이유는 없다. 또 혈연, 지연에 대한 애착과 문화를 아끼려는 습성, 소속감 같은 것은 인간의 본능이라 해서 나무랄일이 아니다. 「그리스」의 어느 철인은-짐승이나 야만인으로 태어나질 않고 「그리스」인으로 태어난 것을 운명의 신에게 감사한다-고 말한바 있다. 이렇듯 인류는 혈통과 문화에 대한 긍지와 애착을 갖고 살아간다. 그렇다면 백제문화의 승화와 재연, 이에 대한 의미부여는 불가피하다는 결론에 이를 수밖에 없다. (필자 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