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륵사는 彌勒三會의 설법을 구현하기 위하여 3탑 3금당 곧 중원․동원․서원의 가람배치로 조성되었다. 그런데 이번에 발견된 미륵사 서탑 사리봉안기에 의하면 미륵신앙과 善化公主에 대한 언급은 없고 沙宅王后가 석가모니의 사리를 봉안하고 있다. 사택왕후의 불교적 성격은 彌勒信仰보다는 法華信仰에 가까웠다. 사택왕후와 동시대를 살았던 大佐平 砂宅智積은 『법화경』에 등장하는 인물로 석가모니와 형제이며 대통부처의 아들이기도 했다. 사택왕후가 법화신앙자라면 미륵사의 중원에 석가를 모시지 미륵을 모시진 않았을 것이다. 중원은 미륵신앙자인 선화공주에 의해서 건립되었고, 동원과 서원은 법화신앙자인 사택왕후에 의하여 건립된 것으로 생각된다. 미륵사는 미륵신앙과 법화신앙이 조화를 이룬 사찰이었다. 가람배치의 측면에서도 미륵의 미륵삼회와 법화의 會三歸一이 어우러졌다. 무왕은 미륵사 창건을 통해 자신을 전륜성왕과 미륵으로 자처했고, 대표적인 귀족가문인 사택씨의 법화신앙을 받아들여 사상의 조화와 정치적 통합을 이루려고 하였다. (필자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