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는 농경생산이 그 사회에 정착할 수 있게 되면 미개사회로부터 초기국가가 성립되고 수리의 확대와 유능한 사제자를 중심으로 한 통합 등에 의해 초기국가의 연합 형태로 발전, 3단계는 생산발전과 더불어 대외적 무력충돌을 통해 광범위한 통합이 진행된 소국시대, 4단계는 오가야, 육가라 제국 등과 같이 몇몇 개의 소국의 연합형태를 거쳐 백제가 성립되었다.
백제 초기 귀족은 왕족의 부여씨, 왕비 진씨, 한성지방의 호족인 해씨 등이며 한성시대 백제국은 구소국을 세력기반으로 하는 귀족연합체였다.
왕도가 위례성으로부터 신도읍이 한성으로 이도하였고 405년 전지왕 즉위 사건으로 진씨가 후퇴하고 해씨가 대두하여 왕위계승에 얽힌 귀족간의 세력투쟁이 있었다. 이때 해씨의 근거지가 한성이라는 사유로 천도는 유력귀족의 근거지와 관계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475년 한성에서 웅진으로 도읍을 옮기게 되었고 구귀족은 그 기반을 상실하여 몰락하든가 고구려에 종속되든지 궁정귀족으로 변화하였다. 궁정귀족으로 된 자는 구왕비족의 진씨와 해씨 뿐이며 사씨, 연씨, 협씨, 목씨, 백씨 등 신흥귀족이 대두하였다.
538년 사비로의 천도는 중국의 양, 서해안지역, 가라제국 등과의 교섭을 위한 것으로 보이며 천도로 인하여 백제의 귀족체제도 궁정귀족의 체제로 통일하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중앙집권적인 귀족연합체제로인 백제의 오방, 오부 체제이다.
그러나 554년 성왕의 전사를 계기로 일본과의 국교를 단절하고 수의 통일에 의해 남조 중심의 백제대중국외교에도 문제가 생기고 대당외교에서 신라에 패한 결과가 되었다. (연구원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