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머리말
Ⅱ. 웅진․사비시기 백제 지배층의 사상적 기반
Ⅲ. 사상적 기반의 형성 배경
1. 중국과의 교류
2. 백제 사회의 현실적 필요성과 여건
Ⅳ. 사상적 다양성의 구현 : 聖王代의 사례
Ⅴ. 맺음말
요약
본고에서는 웅진·사비시기 백제 지배층의 사상적 기반은 어떤 것이었는지, 그 기반은 어떤 배경 하에서 형성되었는지를 밝히고, 그들의 사상적 다양성이 현실정치에서 어떻게 구현되었는지 聖王代를 예로 들어 살펴보았다.
웅진·사비시기 백제는 중국과의 활발한 교류를 통해 중국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한 만큼, 중국과의 교류관계에 주목하고, 또 중국사와의 비교 고찰이라는 방법을 통해 백 제 지배층의 사상적 지향을 밝혀냈다. 웅진·사비시기 백제 지배층의 사상적 기반은 유교·불교뿐만 아니라 음양오행, 천문·역법·의 약·점복까지 광범위한 범위에 이르렀는데, 이는 육조 사대부가 지향했던 “通人”과 유사했다. 사상적 다양성이 형성된 배경 중의 하나는 중국과의 교류였다. 그러나 백제에서 중국의 선진적인 사상과 문화를 들여올 수 있었던 것은 무령왕·성왕대의 백제사회가 새로운 사상과 문물을 받아들여 새로 운 사회 운영 원리를 제시하려는 필요성과 여건이 갖춰져 있었기 때문이다. 백제사회의 지배층은 체제 정비를 통한 현실사회의 문제점 해결에 더 비중을 둔 것이다.
성왕대의 체제정비는 유교의 禮와 불교의 戒律의 相通에 기반한 유·불의 조화 속에서 이루어졌다. 국가체제와 지배질서를 정비하기 위한 통치 이데올로기 차원에서 유교와 불교가 작동을 했던 것이다. 여기에 22부사 중의 하나로 日官部가 존재한 데서도 알 수 있듯이 실제로 통치를 해나가는 데 있어서는 점복술과 같은 도교적 요소도 중요한 기능을 담당했다. 따라서 성왕대는 유교·불교·도교의 가치를 모두 인정하면서 사회를 운영해나갔다고 볼 수 있다. (필자 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