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북도 익산 彌勒寺址에서 발견된 백제시대 문자자료에 대한 기초적 이해를 위하여 자료의 현황과 기존의 연구흐름을 정리하고, 이를 바탕으로 銘文의 역주를 시도하였다. 백제시대의 유물이 분명한 墨書銘文瓦와 2009년 석탑 해체 과정에서 발견된 舍利莊嚴具 중 명문이 있는 金製舍利奉安記, 金製小形板, 靑銅盒(1점)을 대상으로 하였으며, 백제기와 특징으로 알려진 印刻瓦는 본고에서는 다루지 않았다.
미륵사지에 대한 고고학적 이해는 일제시기에 시작되었으나, 전면적인 발굴조사의 필요성은 1960년대에 들어 국내 학자들에 의한 연구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제기되었다. 이에 따라 1974년부터 2010년까지 37년에 걸쳐 동탑지, 미륵사지 全域, 서탑의 해체·보수 등의 조사가 이루어졌으며, 그 결과 미륵사지가 三院竝列式의 독특한 가람배치 형식을 지니고 있었음이 확인되었고, 백제시기부터 조선시기에 이르는 다양한 유물이 수습됨으로써 미륵사지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킬 수 있는 바탕이 마련되었다. 특히 서탑에서는 舍利莊嚴具 일체가 고스란히 발견되어 미륵사의 창건주체와 목적, 석탑의 건립연대 등 다양한 방면에서의 연구가 활성화되는 계기가 되었다.
본고의 검토대상이 된 자료 중 墨書銘文瓦는 印刻瓦를 제외하면 유일하게 백제시대의 것이 확실하다고 보고된 銘文瓦이다. 암키와의 안쪽 면에 먹을 이용하여 붓으로 ‘∨道’이라고 쓰여 있는데, 글자가 선명할 뿐만 아니라 능숙하고 반듯하게 쓴 솜씨가 눈길을 끈다. 어떤 내용을 확인하거나 명시할 필요에서 쓴 것임은 분명하겠지만, 이 자료를 본격적으로 다룬 연구가 없어 구체적인 내용은 알 수 없다.
2009년에 발견된 金製舍利奉安記에는 앞면에 99자, 뒷면에 94자로 전체 193자에 달하는 선명한 명문이 새겨져 있어 학계의 큰 관심을 받았다. 즉, 문체와 서체 등의 측면에서 다양한 견해가 제시되었을 뿐만 아니라, 내용적인 측면에서도 沙乇王后가 伽藍을 세우고 사리를 봉안하였다고 한 서술이 주목을 받아 미륵사의 창건 주체와 그 배경이 된 사상 등 다양한 역사학적 쟁점들이 부각되었다. 금제사리봉안기 외에 3점의 금제소형판과 청동합 1점에서도 명문이 발견되었는데, 그 내용은 시주자의 이름과 시주물품의 양을 나타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금제소형판의 경우 고가의 교환 화폐 용도로 귀족층에 의해 주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이해되고 있어 주목된다. (필자 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