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머리말
Ⅱ.『삼국유사』흥법 난타벽제조의 검토
Ⅲ. 마라난타의 행적과 불갑사 창건
Ⅳ. 침류왕의 불교 수용과 아이부인
Ⅴ. 아신왕의 교서 반포와 불법 홍포
Ⅵ. 백제의 불교 수용연대 논란
Ⅶ. 맺음말 -『삼국유사』난타벽제조의 역사적 의의
요약
본 논문은 삼국유사에 실려 있는 난타벽제조에 관한 연구이다. 난타벽제는 마라난타가 처음으로 백제에 불교를 전했다는 뜻이다. 마라난타는 호승이라고 하는데, 그의 출신지는 서역보다는 인도로 여겨진다. 침류왕 때 인도와 중국 동진을 거쳐 백제에 온 마리난타는 한산에 절을 창건하고 10명의 승려를 도승하였다. 10명의 승려는 백제에 정식 상가가 성립되었음을 말한다. 『삼국유사』에 언급이 없지만, 침류왕의 어머니인 아이부인은 마라난타와 함께 백제 불교 수용에 큰 역할을 하였다. 침류왕의 아들인 아신왕은 불법을 믿어 복을 구하란 교서를 내리는데 이 교서에도 마타난타가 일정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일설에 의하면 마라난타가 전남 영광 불갑사를 창건했다고 하지만 믿을 수 있는 기록에 근거한 것은 아니다. 『일본서기』에 근거하여 백제의 불교 수용을 4세기가 아닌 5~6세기로 보지만 이것은 겸익의 율의 정비를 불교 수용으로 잘못보고 내 린 결론이다. 인도에서 온 마라난타의 불교전래가 한국불교에 중국불교가 아닌 인도불교의 뿌리는 내리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마라난타가 백제에 온 지 150년 뒤 백제의 겸익은 인도에 가서 범본 경전을 가져와 백제 신율을 만들기도 하였다. (필자 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