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남위례성의 위치에 대해서는 전부터 여러 가지 이설이 있었고 최근에 와서는 유적, 유물 등을 통해 한강변의 풍납리토성, 몽촌토성, 석촌동 부근을 비정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곳은 백제초기 수도 소재지로 증명할 문헌적 자료가 없고 연대가 드러나는 유물이 발견되지 않는 이상 하남위례성 또는 한성으로 볼수 없다. 우선 삼국사기 기사 ‘立柵漢山下’에 보이는 한산을 지금의 남한산으로 보는 이상 강변지대까지 20리도 넘는 원거리가 된다. 또 고대국가들의 도읍지는 대개 배산임수의 지리적 조건을 갖추었는데 백제의 경우에 있어서도 하북위례성이 그랬고 후기의 공주, 부여가 모두 그러했다. 더구나 이들 백제고도가 자리잡았던 곳은 모두 산성의 요새가 지근거리에 있었다는 점을 유의해야한다. 이에 강변도읍설은 신중히 생각해 볼 문제이다.
뿐만 아니라 백제의 도성이 남한산하 지금 고골 일대의 지역이었다 하더라도 이들 백제유적이 있는 강변일대는 그곳에서 과히 먼거리는 아니다. 또 백제의 감시에는 남방보다도 항상 강대국 고구려가 있는 북방지역을 중시했던만큼 이 지역의 성곽수축이 자주 있던 것을 볼 수 있다. 또 북벌 준비를 할 때, 대개 이 한강변에 군사를 집결하여 훈련하였다는 삼국사기 기사가 있다. 풍광이 가려하고 교통이 편리한 이곳에는 자주 국왕의 순무도 있고 명가들의 별업도 있었을 것이니 장군, 고관의 묘분이 있을 수도 있다.
한편 선인들이 이미 하남위례성을 백제초기 도읍지로 인정한 고골일대는 문헌자료나 지리적으로 그 조건이 거의 완벽에 가까우며 남한산, 금암산, 이성산이 남, 서. 북의 3면을 둘러싸고 동쪽으로는 멀리 검단산이 원경을 이루며 가까이는 객산이 바로 앞에 있어 풍광이 수려하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