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미열전의 주제는 도미부인의 정절을 미화시키는데 초점을 두는 것 같지만 궁극적으로는 개로왕의 탐학무도한 실정에 관한 것으로 도침설화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이를 통해 아무리 사제군주라 하더라도 군주로서의 윤리적 덕성이라는 기본적 자질이 요구됨을 엿볼 수 있다.
도미는 사회경제상 지위로 보아 독립적인 자기경리를 갖는 자영농민에 해당한다고 추측된다. 자영농민은 3세기 이후 국가적인 권농정책 아래 도작 보급, 관개수리사업 전개 등과 같은 새로운 농업기술의 발달, 철제 농기구의 보급, 우경 등을 통해 농업생산력의 괄목할만한 향상을 가져왔다. 이러한 백제의 농업발달은 촌락농민에 의한 개별적 토지사유를 가능케 해주었다. 백제 자영농민들은 실질적인 국가의 수취대상자였기에 바로 왕권의 안정과 직결되었다. 따라서 왕권은 귀족들의 사적 지배권을 통제하고 이들 자영농민들을 국가권력에 직접 연결시켜 국가의 공민으로 편제하기 위해 적극적인 자영농민 조호정책을 펴나갔다. 그런데 개로왕대 도미와 같은 자영농민의 물질적 기반 위에 왕권의 전제화를 추진하는데 잦은 영역동원과 군주로서의 부덕함 등은 민심의 이탈을 가져왔다. 이런 면에서 도미설화나 도침설화는 5세기 후반 개로왕대의 정치, 사회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라 하겠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