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는 제왕운기 백제기에 기록된 백제의 별친 ‘응준’의 의미와 그 역사적 성격을 파악하기 위하여 백제의 국호 및 사국유사 황룡사 구층탑조의 구한 명칭 가운데 제 5층의 응유와 연결시켜 검토하였다.
여기에서 나타난 사실은 백제의 별칭으로 응, 응준, 응유 등이 존재하였으며 이들은 기존에 알려진 백제, 십제, 남부여 등의 국호와 별도의 성격을 반영함을 알 수 있다. 즉, 백제의 국호, 별호로서의 백제, 십제, 남부여 등은 백제건국의 중심세력인 부여계 유이민집단의 정치적 성장과 계통성을 반영한 명칭이었다. 그러나 응준 등은 이것과 무관하게 매와 관련된 내용을 반영한 것으로 별개의 대응 존재를 상정케 한다. 이에 따라 삼국사기 등에 나타난 매관계 기로을 검토한 결과 이들이 백제에 집중되고 있으며 백제의 민간에서도 매사냥이 광범위하게 행해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고 응준 등의 명칭이 이와 관련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응의 순수명칭이 구지, 구기, 구디인 바 이와 관련된 지명이 백제 영역에 집중되고 고려-조선시대를 통하여 전국에서 매의 산지가 백제영역인 충청, 전라 지역으로 특기되는 사실은 백제사회가 매와 관련되어 특징적으로 지적될 수 있음을 알게 한다.
이같이 매와 관련된 백제사회의 성격은 백제의 상층지배세력인 부여고구려계 유이민세력과는 관계가 약한 문화임을 알 수 있는 바, 결국 이러한 성격은 백제가 구체적 정치체로 등장하기 이전의 삼한사회 문화성격에서 그 연결성을 찾게한다. 즉, 삼한사회에 존재한 새 신앙이 지역적 특성으로 나타나 신라에서는 닭으로 구체화되어 신라의 별칭으로 계림이 등장하고 백제는 마한 등을 포용한 바 이 지역에서는 매가 구체적 존재로 인식되어 응준 등이 존재하게 되었다고 이해된다.
매가 시베리아 샤마니즘에서 샤만의 조상 또는 최초의 샤만으로 인식된 사실은 삼국지 마한전에 보이는 소도 및 천군으로 대표되는 고유신앙형태가 이와 계통을 같이한다는 점을 가안할 때 매의 존재와 의미가 보다 확연하게 부각된다.
결국 백제의 별호 응준은 백제의 부여계 지배세력과 관계짓기 힘들며 백제에 영유된 마한 등의 매 관련 문화를 반영하는 것으로 이해되어 백제사회의 이중성 성격의 한 측면으로 파악된다. 따라서 이같은 별칭은 공식적 명칭으로서의 국호와는 별개로 그 지역의 특성을 집약적으로 반영하여 유지된 것으로 이해된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