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령왕릉에서 출토된 문자는 왕과 왕비의 매지석과 매지권, 방위권, 이외에도 팔찌 등의 명문이 있다. 본고에서는 그 가운데 역사적 내용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는 지석과 매지권의 문구 해석과 해석상의 몇 가지 문제점을 지적하고 필자의 의견을 제시하였다.
왕릉에서 나온 지석으로는 삼국 중 유일한 것이므로 이에 대한 정확한 해석을 하려면 다른 유사자료가 더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자료가 더 출토되기를 기다리고만 있을 수 없으므로 이를 해석한 의견을 제시하였다.
무령왕릉 출토 지석과 매지권의 특성을 몇 가지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왕과 왕비의 묘지석이 중국적 양식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중국에서는 한대 이래 양식을 갖추어 묘지석을 작성하였다. 이러한 형식이 백제는 아직 수용되지 않았으며 창의적으로 작성한 것을 뜻한다. 또한 간략한 내용을 담고 있는데 이는 중국의 묘지석문에 대한 이해가 없기 때문이다. 매지권에서도 중국의 경우에는 천제지신이 거명되는데 천제에 대해서는 전혀 보이지 않으며 지신의 명만 거론된다. 지신을 불러 계약을 체결한 것이 특색이며 지신 중 토부모라는 명칭은 중국에서는 유례를 찾을 수 없는 독특한 개념이다. ‘不從律令’도 백제에서의 독특한 문구이다. 왕의 묘지문 뒷면에 묘의 위치를 간지로 표시한 것, 서방의 간지를 소략한 것, 묘지석 가운데에 구멍을 뚫어 묘의 위치를 표시한 것도 독특한 발상이라 할 수 있다.
삼국사기 서술과 무령왕릉 출토 지석과 매지권을 비교해 보면 당시 천자가 쓰는 용어를 왕실에서 썼음에도 불구하고 삼국사기는 이를 격하시켜 왕의 죽음을 나타냈다.
이처럼 백제 무령왕대 남조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선입견이 독자적 특성을 해석하는데 방해가 되고 있다. 삼국시대 중국문화의 영향을 크게 입었다 하더라도 거기에는 독자적 특성이 강하게 남아 있었음을 무령왕릉 지석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연구원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