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머리말
2. 삼국 금석문의 인명 표기
3. 백제 지방민의 인명 표기
4. 建興五年銘光背의 제작국 문제
5. 맺음말
요약
고구려, 백제, 신라 금석문에서 모두 직명, 출신지명, 인명, 관등명의 4가지가 기재된다. 인명과 관등명의 순서는 고구려와 백제에서는 관등명이 인명의 앞에 가나, 신라는 관등명이 인명의 뒤에 간다. 이런 표기 방식을 기초로 백제 금석문에 있어서 지방민의 인명 표기를 살폈다. 그 대상이 될 수 있는 자료는 사택지적비가 있다. 명문의 내용과 문헌사료에 의해 사택지적은 대좌평 관직명을 가진 중앙 5부 출신 귀족으로 보았다. 사택지적비에 부명이나 대좌평이란 관등명이 없는 것은 문헌에 나오는 642년 반란과 관련되어 관등, 관직을 뺏겼기 때문이라 해석된다. 그리고 백제 금석문의 지방민 인명 표기를 직명+성촌명+인명의 순서로 기재될 가능성을 신라 금석문 자료를 참조해 제시하였다.
建興五年銘光背은 지금까지 충주지방에서 발견된 점에서 제작지 문제를 해결했다. 그러나 경남 의령군에서 발견된 延嘉七年銘金銅佛立像이 고구려 제작품인 점 등으로 통해 백제 제작품일 가능성도 있다는 의문을 제기한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