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의 성명에 관한 문제를 다각도로 검토하였다. 이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옛 문헌에 나타나는 최초의 한국 성씨는 해씨이다. 이 해씨는 고구려의 시조성인 고씨를 사이에 두고 제2대 유리명왕부터 제5대 모본왕까지 쓰였다. 그리고 신라의 성씨는 박씨로부터, 가야는 김씨로부터 시작되었다. 이처럼 그 성씨의 연원이 부여, 고구려, 신라, 가야는 모두 시조의 성씨로 부터였는데 백제만은 시조의 성씨가 밝혀져 있지 않다. 온조가 고주몽의 아들이니 당연히 고씨로 인식할 것으로 여겼기 때문인 것 같다. 그래서인지 백제의 왕성은 후기에 비로소 나타난다. 그러나 국내외의 옛 문헌에 적혀 있는 백제의 왕성은 고씨가 아니라 부여씨와 해씨이다. 아마도 백제의 초기나 중기에는 왕성이 잘 쓰이지 않았거나 해씨가 고씨보다 적극적으로 쓰였을 뿐 둘다 혼용되어 오다가 후기에 이르러서 복성인 부여씨가 발생하여 교차된 것이라 추정한다.
2. 백제의 평민성 역시 왕족의 성씨가 그 처음이 아니었나 한다. 최초로 발견되는 평민의 성씨는 역시 해씨이기 때문이다. 고구려, 신라와 같이 백제는 왕이 사성한 흔적이 없다. 다만 사씨, 연씨, 협씨, 해씨, 진씨, 국씨, 목씨, 백씨 등 8대성이 있었을 뿐이다. 8대성이 중국 사서에 적힌 시기는 백제의 중기였을 가능성이 있다. 복성들이 생성되기 직전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백제인의 성씨 발달과정은 단→복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단성의 쓰임은 계속되면서 아울러 복성이 쓰인 것이라 하겠다. 어쨌든 복성의 존재는 특이하다. 부여, 고구려, 신라, 가야 등에서 발견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일본 성씨 중 복성이 백제의 복성과 어떤 관계가 있지 않을까 의심해 본다.
3. 백제의 성씨가 단성인가 복성인가를 판별하는 문제는 난제이다. 가령 어떤 성명이 4자로 구성되어 있을 때 아무런 근거도 없이 전자의 2자를 복성으로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문제만을 중심으로 더욱 깊고 넓게 考究하여야 할 과제로 남겨 둔다. 그리고 복성 중에는 그 연원이 태어났거나 사는 고장의 지명일 수 있고 아니면 2개 성씨가 복합되어 복성을 형성하는 경우 등을 고려할 수 있다. 전자의 예가 沙宅씨와 阿宅씨이고 후자의 예가 木劦氏와 眞慕氏일 것으로 추정한다.
4. 백제인의 이름은 초기에는 단자명이 대부분이었다. 또한 돌림자가 아닌가 의심함직한 사례를 발견하기도 하고, 동일한 이름을 쓰기도 하였다. 백제의 인명에 관한 의미는 거의 파악할 수가 없다. 그것들에 대한 漢譯表記가 없기 때문이다. (필자 결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