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緖言
2. 梁書 〈百濟傳〉의 性格 檐魯
3. 檐魯에 대한 見解 및 問題
4. 檐魯에 대한 새로운 解釋
5. 結論
요약
『양서』에 기록된 22담로는 백제가 고구려에 의하여 한강유역의 빼앗기고 그의 영토가 축소되었던 웅진시기의 영토 판도를 말해주고 있는 것으로 이해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지방의 치성』=『담로』를 중심으로 하는 지방의 통치는 시기에 따라 그의 수가 증감되었다. 즉 시기에 따라, 그리고 중요성에 따라 그 『지방의 치성』=『담로』는 그의 이름이 方城이나 郡城 등으로 새롭게 조직되기도 하였던 것이다. 결국 『양서』에 기록된 『담로』는 우리말의 흙이나 돌, 벽돌 등으로 집가를 둘러쌓아 막는 시설물의 뜻인 고유한 우리말의 『담』과 고대어에서의 “땅”을 의미하는 『로』에서 비롯되었으며, 의미는 “담으로 두른 땅”이었던 것이다. 이는 백제의 마한정복지에 대한 통치의 방법에서 비롯된 지방지배의 방식으로서 마한의 국읍에 위치하였던 토성을 중심으로 하는 소국들을 정복하고 백제는 다시 이곳을 이들의 토성을 중심으로 하여 다스렸던 것이다. 그러므로 중국정사의 기록인 『양서』 백제전에서의 檐魯란 바로 지방에 위치하던 흙이나 돌, 벽돌 등으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을 둘러쌓아 만들어서 지방의 행정을 위하여 각지에 두었던 『지방의 치성』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백제의 지방지배에서 이러한 『지방의 치성』을 중심으로 하는 것은 전시기를 통하여 시행되던 것으로서 일정한 시기에 행해진 특수한 제도로서 이해하기 보다는 백제의 전시기에 걸쳐 실시된 지방통치의 기본제도이었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