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의 군사조직의 구성과 성격을 사비시대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백제의 군사동원 양상을 분석한 결과 몇가지 특징을 보인다. 백제 전기에는 국왕이 ‘親師’하는 경우가 많았으나 점차 대규모 군대나 정예부대 출동시는 좌장이나 좌평이, 1만 이하의 군사동원시에는 달솔급이 지휘관을 맡았다. 이들이 통솔한 부대는 중앙군의 경우도 있었으나 규모가 큰 경우에는 동원군이 많았던 것 같다. 따라서 상비군과 동원군으로 군사를 나누어 볼 수도 있고, 보병․기병․정예부대나 甲士 등의 병종구분도 찾아진다.
또한 왕도의 행정구획인 5부 25항도 군사적 단위로서 기능하였다. 5부의 군사는 도성 내 상비군이고, 도성 주위 산성에 주둔한 군사들은 평상시 군사훈련을 받기도 하고, 왕도의 외곽을 방어하는 역할을 수행하다가 전시에는 부분적으로 동원되기도 했다. 이들은 각 부에서 차출된 군사도 있지만 군역의 의무를 진 정남들의 비중이 높았던 것으로 보인다.
사비시대의 지방제도인 5방체제도 군사동원체제를 갖추고 있었다. 나아가 동방과 서방과 북방을 왕도 주변에 배치함으로써 수도방어를 강화하는 역할을 했으며, 남방과 중방을 고르게 편제함으로써 지방통치를 원활히 하였다. 각 방의 병력을 1천여 명으로 생각할 때 지방군으로서 5천명이란 병력은 많은 것이 아니었는데, 이는 상비군만을 기록했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된다. 이들은 상비군으로서 항시 전쟁에 동원될 수 있었고, 대규모 전쟁시에는 동원령이 내려져 일반 군사들을 소집한 것으로 보인다.
37개 군도 전국에 고르게 배치되었다. 백제 멸망기에 보이는 37개 군은 영역의 확장과 더불어 전국에 편제되어 방과 여러 소성들을 연결하는 실질적인 행정단위로서 기능하였다. 따라서 방에 방령 1인과 방좌 2인을 둔 것과 대등하게 군에는 군장 3인을 두었던 것이다. 지방관으로 파견되었던 달솔․덕솔 등은 백제 정치사의 전개에 있어 주로 군사활동을 주도하고 있었다. 따라서 달솔․덕솔이 지방통치체제의 정비에 있어 지방관으로 파견되었다는 것은 곧 그들의 군사적 성격과 관련지울 수 있다.
5방체제는 관품체제 및 관료제의 정비에 힘입어 정비될 수 있었으며, 종래의 단선적인 지방행정에서 민사․군사․감찰 등의 3부분으로 분화․발전되어 나가는 단계였다. 5방체제는 성단위의 누층적인 지방통치체제의 정비된 모습을 보임으로써 백제의 군사역량은 지방제도의 정비를 통해 한층 강화될 수 있었다. 이는 웅진천도를 경험한 백제왕실에서는 그러한 사태의 예방을 위해 행정적인 단위만이 아닌 일원적 체제하의 군사적 성격이 농후한 지방통치체제를 모색했기 때문이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