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한문한 자료에 대해 재고찰하였다. 이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백제한문학 형성배경은 한민족의 반도이동으로부터 중국과의 잦은 왕래에서 문체적 교린과정을 겪었을 것이며, 그 보편화 시기는 근초고왕 무렵일 것으로 추측된다.
2. 백제한문학의 문학적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문헌문의 자료는 10여편에 지나지 않으나 그 중에는 문체적 특성을 잘 나타내 준 것들이 있다.
3. 백제 한문학의 자료는 인용방법 등 진위 여부가 불가능한 문헌문에 비해 당대의 문․필체 등 생생하게 보존되어 온 금석문이 보다 실제적인 자료임을 실감할 수 있다.
일본측 자료인 『칠지도명』과 『인물화상경명』은 명문에 나타난 대로 369년과 503년이라는 제작년대가 뚜렷하며 箴銘과 韶令類인 이들 문체는 隨筆장르로 형성기 백제 한문학의 본질적, 비본질적 요건을 헤아려 보게 된다.
중국측 자료인 『부여융묘지』는 작자의 국적문제가 있으나 지문을 詳考해 본 바는 백제 旧臣의 作이 분명하며 병려문체의 활용은 당시대에 걸맞는 양식으로 어구, 용사 등이 미숙한 대로 典範을 따르고 있다.
국내자료인 『사택지적비』는 국외 문헌들에도 연대와 작자에 대한 기록이 있고 碑誌의 구조 또한 對仗 등 뛰어난 표현기법으로 백제 한문학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서 치밀한 풍경 묘사와 완곡한 감정서술을 통하여 서정적 분위기를 형성하였다고 본다. (필자 결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