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멸망이 일본에 미친 영향에 대하여 문학과 역사라는 측면에서 살펴보았다.
첫째, 정치적․군사적인 면에서 백제멸망이 일본에 미친 영향으로서는 백제멸망 후 일본에서는 나당연합군의 추격에 대비하여, 서일본의 각지와 구주지방에 산성․수성 등을 쌓고 대마도․臺岐․筑紫 등에 防人(병사)을 배치하였으며, 宮都를 大和(奈良)의 飛鳥지방에서 近江의 大津으로 옮기는 등, 국방을 강화하고 정치적 안정을 도모한 점을 들 수 있다.
둘째, 망명지식인들의 눈부신 활약에 의해, 그때까지 별다른 결실을 보지 못했던 법률(율령제도)․행정(호적)․교육․병법(축성기술) 등의 여러 분야에서, 단기간 내에 비약적 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는데, 이러한 발전은 수나 당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돌아온 견수사나 견당사 일행의 영향이라기 보다는 백제멸망으로 인해 대량으로 일본으로 건너간 망명인들의 높은 학식과 경험과 기술이 아니었다면, 아마 불가능했을 것이다.
셋째, 높은 학실과 한문학의 지식을 겸비한 망명인들에 의해 近江朝의 궁정문화와 문학이 화려하게 꽃핀 것도 결국 백제멸망의 영향이라 볼 수 있는데, 특히 근강조의 문학이 갖는 일본문학사상에서의 의의는 백제의 망명학사들에 의해 일본최초로 한문학의 발달을 가져왔다는 점이고, 그것에 의해 和歌(萬葉歌)도 크게 발전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결국 근강조의 문학은 백제멸망이라는 직접적인 영향에 의해 성립된 일본문학사상의 획기적인 대전환기이면서 일본시가사상의 대발전기라고 단정지을 수 있다.
넷째, 일본이라는 국호의 성립과 천황이라는 호칭의 본격적 등장도 백제멸망의 단적인 영향이라 볼 수 있다. 다시 말하면, 백강 전투의 敗北으로 인한 충격, 이로 인한 구호족의 불만과 정치적 불안으로 인해, 근강의 大津으로 천도를 감행한 천지조정은 정치적․사회적․정신적으로 안정을 되찾자, 새로운 국가로서의 출발을 내외에 알리는 의미에서, 국호를 왜에서 일본으로 바꾸어 보리고, 왕호도 대왕에서 절대군주로서의 이미지가 강한 천황으로 바꾸어 호칭하게 되었는데, 그 근본원인이 밸제멸망에 있는 것이고, 이것 또한 백제멸망의 영향이라 생각되는 것이다. (필자 결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