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머리말-마한사로서의 해남 지역과 지리적 환경
II. 해남 지역 國세력의 성장
III. 백제 영토로의 편제과정
IV. 맺음말
요약
철기문화의 유입에 따라 해남 지역의 사회구조와 세력관계는 재편성되었지만 지리적 특성상 단일한 정치세력으로 발전하지는 못하였다. 해남 지역은 지형적 생활권에 따라 두륜산맥을 경계로 좌우편으로, 두륜산맥 좌편은 다시금 변풍산을 경계로 하여 남북으로 모두 3개의 생활권으로 나뉘어진다. 즉, 두륜산맥 좌편 남부의 군곡리세력과 그 북부의 옥녀봉토성세력 그리고 두륜산맥 우편의 북일면세력이다. 이러한 3대 세력 가운데 군곡리세력은 마한의 素謂乾國 으로 추정된다. 漁獵과 농경을 기반으로 한 군곡리세력은 서남해안의 기항지에 자리 잡은 지리적 이점을 이용하여 대외교역으로써 성장하고 번성하였다. 그러나 4세기 초에 중국군현이 한반도에서 소멸됨에 따라 寄港地이자 교역 중개지였던 군곡리세력은 대외교역의 침체에 직면하여 커다란 타격을 입었다. 그럼에 따라 두륜산맥 좌편 남부의 주도권은 죽금성세력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죽금성은 입지조건과 축성방식뿐 아니라 인근 고분군의 출토유물 등에 비추어 볼 때 4~5세기대 두륜산맥 좌편 남부지역을 대표하는 위치에 있었다. 두륜산맥 좌편 북부 지역은 초기 철기시대 이래로 옥녀봉토성 일원을 구심으로 하여 4세기 이후에도 여전히 번성하였다. 이 세력은 제철산지를 개발하였거나 아니면 가야제국과의 교역을 통하여 철 소재를 확보하였을 가능성이 있다. 해남 지역 마한세력의 성격은 282년에 新彌國을 비롯한 20여國 지역 연맹체의 맹주로서 중국과 교섭을 가진 사실에서 유추할 수 있다. 신미국은 369년에 백제의 마한경략의 한 획을 긋는 지역으로서 등장하는 ‘忱彌多禮’와 연결되는데 두륜산맥 좌편 북부의 옥녀봉토성 일원으로 비정된다. 그러나 침미다례는 이 때 극심한 타격을 받은 결과 영산강유역 마한제국간의 주도권은 나주 반남면 지역으로 옮겨지게 되었다. 그러나 웅진천도 이후 백제 중앙권력이 호남경영에 박차를 가하게 됨에 따라 해남 지역 또한 5세기말에는 백제의 영토로 편제되어 檐魯的 지배를 받았음이 거의 확실하다. 또 백제의 전면적인 지방지배 강화시책인 방․군․성 체제의 확립에 따라 해남지역에는 3개의 縣이 설치되어 康津에 예속되었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