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머리말
II. 《三國史記》에 보이는 백제와 왜의 관계
III. 《日本書紀》에 보이는 왜와 백제의 관계
IV. 맺음말
요약
7세기 동아시아 정세상에 있어서 왜와 백제의 교섭에 대해 검토하여 보았다. 사료에 의거하여 살핀 결과 《三國史記》에 보이는 백제의 對倭交涉은 한반도 정세와 연관성을 가지며 전개되었으나 대체로 우호적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는 백제의 국익으로 보아서도 왜와 적대적 관계를 견지할 이유는 없었다고 보아진다. 한편 《日本書紀》기사의 경우에도 倭가 삼국 혹은 중국에 대해 적대적 교섭을 가진 사실이 보이지 않으며, 오히려 삼국과 중국에 대해 우호적인 교섭을 벌려 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는 삼국과 지리적으로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상호 적극적인 교섭이 어려웠다는 점도 생각될 수 있지만, 적어도 왜로서는 삼국과 적대적인 관계를 유지할 필요성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이해되어 왔던 것처럼 백제와 왜의 관계가 한쪽이 일방적으로 도움을 주었다든지, 혹은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에 附庸․服屬되었던 것과 같이 이해하여 온 역사상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는 사료에 의거한 실증적 분석에 의한 것이 아니라 선입관적인 편견의 소산이라 생각된다. 이러한 편견된 역사상을 배태시킨 요인은 첫째, 국가 간의 대외적 교섭을 상대방의 이해관계를 고려하지 않은 일원론적 관계로 파악하였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둘째, 《日本書紀》에 보이는 倭의 대외교섭을 비판 없이 수용한 결과로서, 推古朝에 기록되어 있는 대신라강경외교를 실제한 역사적 사실로 보고 신라에 대한 강경정책은 백제와의 친밀한 교섭관계에서 나온 것이라 해석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倭의 정치적 필요성이 전혀 고려되지 아니한 단편적 파악인 것이다. 설령 對新羅强硬外交策이 존재하였다 하더라도 이는 《日本書紀》의 기록조차도 倭가 加耶를 부흥시키기 위한 행위였던 것으로 百濟를 위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를 근거로 倭朝廷의 내부에는 친백제․반신라적 움직임이 있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설득력을 가지지 못한다고 할 것이다. 따라서 663년에 일어난 “白江戰鬪”에의 왜군파견의 동기를 倭와 百濟의 전통적인 우호적 교섭에 의한 결과로서 이해할 수는 없고, 이는 당시의 한반도 정세의 변화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