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I. 국가 형성 시기에 관한 문제
II. 건국 주체세력에 관한 문제
III. 통치체제에 관한 문제
IV. 강역 및 대외관계
맺음말
요약
최근 주목할 만한 성과로는 이른바 遼西經路說에 대해 새로운 사료를 발굴하여 새롭게 접근한 것을 들 수 있다. 이는 몇몇 직접적인 사료에만 의존하거나 대세론에 기댄 기존의 연구에 비해 한 단계 진전한 것으로서 해석의 옳고 그름을 떠나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한성도읍기의 사상 및 종교에 대한 접근이 서서히 늘고 있다는 점도 반가운 일이다. 다만, 기존의 통상적인 접근법과 극심한 자료 부족의 한계로부터 벗어나는 길을 아직 찾지 못해 여전히 정치사에 부속된 사상․종교사에 머물고 있다는 점이 아쉽다. 최근 고고학계의 발굴 결과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아 참 안타깝다. 사실 풍납토성이 축조연대 및 축성과정에 대한 견해 차이가 2~3세기나 오락가락한다는 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이다. 포천 반월산성, 이천 설봉산성․설성산성 등을 둘러싼 은밀한 논의가 백제토기 규정 기준에 대한 물밑 논쟁은 고고학의 과학성과 엄정성에 큰 상처를 입히고 있다. 또, 기왕 신라 고분으로만 간주하던 방이동고분군에 대해 일부를 백제 무덤으로 보거나 백제의 무덤이던 것을 신라인들이 재활용했다는 주장이 제기된 마당에 논의조차 없는 점도 자연스럽지 않다. 漢城末 고구려와의 관계는 앞으로 풀어야 할 큰 숙제를 안고 있다. 아차산의 고구려 보루군을 발굴하는 과정에서 5세기 중엽에 이미 고구려가 백제 도성의 코앞까지 진출했다는 주장이 제기된 것이다. 한강을 사이에 두고 고구려 군사와 대치한 상황에서 개로왕을 비롯한 백제의 지배층이 지금의 풍납토성․몽촌토성에 거주했다고 보기에는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점이 있으므로 이 문제에 대한 논의가 불가피하다. 아마도 논의 과정에서 역사학계와 고고학계의 간극은 조금 더 좁혀질 것이다. 동양의 전통적인 관점에서의 역사학은 교훈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역사적 가치와 의미를 중시하고 그것에서 역사학의 존재 의의를 찾았다. 그러나 지금은 시대가 변해 각종 학문분야의 폭이 넓어졌다. 단순히 사상과 이념의 측면에서만 역사학의 가치를 강변할 것이 아니라 보다 적극적으로 연구의 폭을 넓혀야 한다. 그를 위해서는 다른 학문과의 연계에 더욱 적극적이어야 한다. 지금까지는 고고학․인류학․민속학․미술사학 등의 한정된 분야로부터 얻을 약간의 도움에만 관심을 보였으나, 더 깊이 더 넓게 교류하고 기여하는 데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다양한 학제적 교류가 역사학의 발전은 물론 역사학의 존재 가치를 더욱 높여줄 것이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