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머리말
II. 대백사란?
III. '봉성'이란?
IV. '대백사봉성'과 미륵사탑 중수
V. 맺음말 - 아울러 여언
요약
미륵사지 석탑에서 발견한 소호편의 명문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그 결과 이 명문은 ‘大伯士奉聖’으로 판독되며, 대백사는 불사와 관련된 기술 관직이고, 봉성은 신라 왕경의 奉聖寺를 나타냄을 알았다. 그리고 이 문구를 통해 미륵사는 왕경의 봉성사성전의 통제와 관리를 받았던 것도 추측할 수 있었다. 한편 미륵사탑을 중수한 시기가 경덕왕대이고, 이때에 봉성사 소속의 대백사가 참여한 사실을 표현한 명문이 최근 미륵사탑 보수공사에서 발견된 것으로 보았다. 한편 소호편의 왼쪽 위 첫 글자는 아마 ‘興’자로 추측 판독된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더욱 불교와 관련성을 더해주는 명문이라 하겠다. 이와 달리 혹여 이것이 ‘典’자라면 ‘大伯士奉聖…’이 ‘奉聖寺成典’과 관련된 문구라는 것을 보다 분명하게 해주는 근거라고 보겠다. 결국 이 소호의 명문은 왕경의 봉성사에 소속된 대백사가 미륵사탑과 관련된 일을 하였던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아울러 미륵사지의 같은 장소에서 발견된 다른 소호편 역시 명문이 새겨져 있었으며 세로 구획선이 있다. 이 조각 역시 함께 발견되어 같은 소호의 부분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으나 확인하기 어렵다. 그리고 문화재연구소에서는 이 소호편은 명문 부분이 훼손되어 있어서 “口入勳 또는 動…新州…” 정도로 읽혀지나, 명확히 판독하기 어렵다고 하였지만, 오히려 ‘入 ’보다는 ‘个’로 볼 수도 있을 듯하며, ‘動’의 결구가 납작하여 아래 ‘灬(火)’가 붙은 ‘勳’으로 보인다. 결국 이 문구는 어쩌면 ‘…逍个勳(動)…新州¨?¨’로 읽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逍个는 이름 같은 고유명사로 보이고, 또 ‘新州’는 고유명사로 보인다. 여기서의 ‘新州’는 흥미로운 구절이다. 이는 분명 지명이다. 우선 신주란 우리가 잘 알듯이 신라가 한강유역을 점령한 뒤에 설치한 주의 이름이다. 즉, 신라는 553년(진흥왕 14)에 백제로부터 한강 하류지역을 빼앗은 직후 이곳에 新州를 두고, 또 군사조직인 新州停을 두었다. 그렇지만 이곳은 신라가 557년에 漢山州로 개칭하였다. 그러므로 만약 명문의 신주가 이때의 신주와 동일한 것이라면 이 내용은 이 시기의 미륵사와 관련된 것이 된다. 그러나 이 시기에는 미륵사 지역은 백제의 영역에 속하여 있었으므로 신라와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 그러면 이 명문에서의 신주는 아마 또 다른 신주일 것이다. 즉 신라가 백제를 점령한 660년 전후한 시기에 익산 지역 또는 이 인근의 어느 지역에 대해서 일시적으로 신주라는 명칭을 사용하였을 가능서이 있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