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론
2. 백강구 전투이후 당과 일본의 교섭
3. 고구려 멸망 전후의 한반도와 일본
4. 신라와 일본의 국교재개
5. 나당전쟁과 일본
6. 결론
요약
백강구전투의 패배이후 고구려가 멸망할 때까지, 천지조는 과거 고구려와의 동맹관계의 틀을 유지하면서, 당의 복속요구에 대해 백제망명인들을 중심으로 하여 산성의 축조 등 방어체제를 정비하는 소극적 대응자세로 일관하였다. 한편 당은 웅진도독부의 백제관리나 탐라인들을 이용하여 對일본외교를 추진하면서 일본이 고구려에 대해 군사원조를 하지 못 하도록 압력을 가하였다. 그러나 고구려 멸망이후 신라는 대당전쟁을 수행하기 위하여 소고구려국사신의 일본파견 주선 등을 통해 일본과 관계개선을 꾀하였다. 당의 위협에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던 천지조정도 고구려멸망이 확실해지자, 신라와의 관계를 강화하는 한편 당과의 수호관계를 확립하고 在唐 일본포로와 견당사 관계자들의 송환을 위한 교섭을 시도하였다. 나당전쟁에서 열세에 처한 당은 일본인 포로의 송환을 통해 군수물자를 보급 받고 일본과의 관계개선을 꾀하나, 결국 웅진도독부의 멸망과 제해권의 상실로 더 이상 사신파견은 없게 되었다. 672년 천무조정이 성립한 이후 당과의 교류가 단절되고 신라와 밀접한 교류가 계속된 것은 천무조정의 선택의 결과라기보다는 신라의 제해권 장악이 뒷받침된 것이었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