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머리말
2. 문헌자료의 검토
3. 영광불법초전설의 역사적 배경
4. 맺음말 - 영광불법초전설의 가능성을 타진하며
요약
영광불법초전설을 마라난타의 불갑사 창건이란 관점에서 문제점을 몇 가지 지적해 보았다. 마라난타 관련 자료를 토대로 영광불법초전설을 주장하지만 이는 사료 비판이 전제되지 않았기 때문에 한계가 있음도 지적하였다. 그리고 마라난타의 영광 불갑사 창건을 주장한 최초의 책자가 본격적인 논문이 아니었기 때문에 나중에 마라난타의 불갑사 창건을 주장하는 논고들이 불갑사 간행의 책자를 주요 논거로 이용하는 것은 제고할 여지가 있다고 생각된다. 백제의 불교 수용은 알다시피 4세기 후반인 384년이다. 그러나 384년은 불교공인의 해이고 불교가 공인되기 이전에 어떤 형태로든지 백제에 불교가 소개 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고구려의 경우 372년 불교가 공인되기 이전 중국의 고승 지둔 도림과 편지를 주고받은 고구려 승려가 있었고 신라의 경우 이차돈의 순교 이전에 경주가 아닌 선산 지방에 이미 불교가 들어온 것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가야의 경우도 삼국유사 가락국기의 사료적 비판이 선행 되어야 하겠지만 기원 1세기에 불교가 들어왔다는 기록이 있다. 불갑사의 창건시기를 언급한 「불갑사고적기」의 ‘羅濟之始’를 굳이 영광의 불갑사에 한정할 것이 아니라 가야를 포함한 서남 해안지역까지 확대 시켜 본다면 달리 해석할 여지는 있다. 서기 1세기에 가야에 불교가 들어온 것을 염두해 둔다면 영광지역 인근까지도 불교가 소개되었을 가능성은 높아지기 때문이다. 가야지역을 통한 불교의 전래 이외에 낙랑․대방지역을 통해서 영광을 포함한 서남해안지역에 불교가 소개 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낙랑․대방은 한반도 서남해안뿐만 아니라 일본과도 교역을 했는데 영광지역이 만약 교역의 한 기착지였다면 이 때 불교가 소개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영광불법초전설을 굳이 마라난타의 불갑사 창건과 연관을 맺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된다. 마라난타 이전에 영광을 포함한 서남해안 지역에 불교가 소개되었고 이 지역에 불갑사를 비롯한 사찰이 조영되었다면 당연히 그 초창주를 백제에서 활약한 최초의 승려인 마라난타에게 가탁하였을 것은 자명하기 때문이다. 전남 영광의 불교는 한반도 서남해안 특히 영산강 유역의 독특한 문화와 중국과의 활발한 교류를 염두해 두고 백제시대 뿐만 아니라 고려와 조선시대까지 시기를 확대하여 폭넓게 접근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