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의식에서부터 통일신라시대에 이르기까지 한국 고대에 나타난 현상들 특히 연희 공간의 의미 구조에 대해 살펴보았다. 제천의식은 하늘과 땅과 사람이 하나가 되는 생각에서 출발한다. 이러한 행위는 생활의 터전인 자연 속에서 나타나며 대부분 계절적인 의식과 관련이 깊다. 또한 이러한 의식은 군주의 지배를 정당화하는 상징체계로 진지하게 다가오지만 반대로 뒤풀이로 이어지는 놀이 공간은 모든 계층의 질서 관계, 특권, 규범의 파기를 통해 일시적 해방을 맞게 된다. 이런 긴장과 풀림의 공간은 ‘연일 음주가무로 이어졌다는’ 행위로 상징되는데, 이는 타자에게 가장 인상적으로 남은 이미지로 문헌에 기록되어 전해진다. 그만큼 이러한 모습은 문헌에 한 줄로 표현된 것이지만 한민족을 아우를 수 있는 보편적 정서로 긴장과 풀림의 역동적 구조는 한민족의 원형적 모습으로 남아있다.
고구려, 백제, 신라에 나타나는 여러 연희는 제천의식에서 벗어나 자생적 문화의 발생적 양상과 외국 문화의 수용을 통해 우리 문화의 특성을 살필 수 있다. 이때의 연희들은 중국이나 서역의 것이 그대로 이입된 것이라기보다는 자생적 토대위에서 변용 발전한 형태이다. 고구려 벽화에 전하는 다양한 산악백희의 모습은 고구려의 풍요로움과 함께 호방한 고구려의 기상을 느낄 수 있다. 특히 마상재, 씨름, 수박희는 고구려에서 두드러지게 볼 수 있는 독특한 형식이며 인형극은 중국에 강한 인상을 남긴다. 이는 고구려가 정치적으로뿐 아니라 문명과 문화가 균형있게 발전되었음을 보여준다.
백제는 중국 남조와 상호 교류를 통해 많은 문화를 수용하면서도 왜의 여러 문화를 변화시키는 등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를 형성시킨다. 그렇지만 제대로 된 흔적을 찾을 수 없어 그들의 연희 공간을 깊이 있게 다룰 수 없는 한계를 지닌다.
신라는 고구려나 백제에 비해 국가 세력은 미약하게 출발하였지만 그 세력이 점점 강대해지면서 나라를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장치가 필요했는데, 팔관회가 그러한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또한 민간에도 여러 연희들이 존재하였지만 처용무와 강창무와 같이 국가의식이 강한 연희들이 중심으로 자리 잡는다. 통일신라시대는 『향악잡영오수』에서 드러나듯 민중들이 흥겹게 즐길 수 있는 연희 형태가 정착되고, 탈춤이나 남사당놀이 등을 비롯한 여러 연희의 원형적 모습을 찾을 수 있다.
이렇듯 한국 고대 연희는 단순히 연희를 행하고 즐기는 것이겠지만 그 의미 구조를 살피면 한민족의 원형을 찾을 수 있다. 결국 이런 놀이 공간은 민중들의 삶을 응축한 형상소이며 한민족을 움직이는 힘이란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