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신라는 종족적으로는 조선 유민, 진한 유민, 중국인 삼자로 구성되지만 강역적으로는 진한을 계승하였다.
둘째, 삼한과 삼국의 관계에 대하여는 마한이 고구려, 변한이 백제, 진한이 신라가 되었다는 최치원 이래의 견해를 계승하였다. 최치원의 경우 이런 계승의식이 강역적인지 종족적 관점에서 행해진 것인지는 불분명하지만 강역적인 것으로 보았을 가능성이 크다. 삼국사기 찬자의 경우 이 계승 관계를 보다 명확하게 강역적(지리적) 관점에서 이해하였다.
셋째, 고구려의 첫 번째 수도는 졸본이며 여기에서 다시 국내성으로 옮겼고 장수왕 때 평양성으로 옮겼다. 졸본을 요동의 의무려산 부근으로 비정하고 국내성 역시 압록강 이북에 있었던 것으로 비정하였다.
넷째, 고구려의 강역은 오늘날 황해도ㆍ강원도ㆍ경기도 지역(남계) 및 발해ㆍ말갈을 아우르는 지역이라고 하였다. 이 가운데 강원도 영서지역은 원래 貊國, 영동지역은 원래 濊國이 었다고 생각하였다.
다섯째, 백제의 첫 수도는 위례성(하남위례성 및 한산하)이고 여기에서 근초고왕 때 한성으로 천도하였고 문주왕 때 웅진, 성왕 때 사비로 옮겼다고 하였다. 위례성의 위치에 대하여는 알 수 없다고 하였고 대체로 오늘날 서울의 강북 지역, 웅진은 공주, 사비는 부여에 비정하였다.
여섯째, 백제의 처음 강역에 대하여 온조왕 13년에 이미 북으로 대수, 남으로 웅천, 서쪽으로 서해, 동쪽으로 주양에 이르는 비교적 광범위한 지역이었던 것으로 보았을 뿐 아니라 온조왕 후반에 이미 마한을 멸망시킨 것으로 보았다
일곱째, 신라의 수도는 처음부터 끝까지 경주였다고 보았다 다만 초기에는 국왕이 금성에 거주하였으나 나중에는 월성ㆍ만월성에 많이 거주했다고 하였다.
여덟째, 신라의 강역은 통일 전 대체로 오늘날 경상도 지역이었다가, 나중 고구려의 남부 지역 및 백제 지역을 흡수하여 통일 이후에는 대체로 오늘날 한반도의 평양, 원산 이남 지역으로 확장된 것으로 보았다. (필자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