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서론
II. 은산별신제의 전개양상
III. 배경설화의 전승양상
1. 1기 : 백제의식 잠복하기
2. 2기 : 백제의식 삽입하기
3. 3기 : 백제의식 드러내기
4. 4기 : 백제의식의 확장하기
IV. 결론
요약
은산별신제의 전개양상을 보면, 은산별신제는 무라야마의 보고서에 의해 1900년 이전에 마을제의인 산신제의 형태를 띠고 매년 거행되다가, 별신제와 결합되면서 경비 문제로 3년에 한 번씩 거행된 것으로 보인다. 1935년 별신제를 지냈음을 알려주는 자료가 오사카의 보고서이다. 이 보고서는 은산별신제를 현지 조사한 것으로 백제와 관련되었음을 구체적으로 드러내지 못하였다. 이런 별신제가 점차 백제와 관련을 강조하면서 변이를 보이고 있는데, 그 시기가 1960년대 이후의 일이다. 1961년 별신제의 장군축문에 와서야 비로소 복신장군과 토진대사(도침)의 삼천신위가 등장하게 된다. 그리고 은산별신제는 중요무형문화재가 된 이후에 공연 형식의 제의와 중요무형문화재의 전승형태로 오늘날까지 제의가 진행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배경설화의 전승양상을 보면 4단계로 나누어진다. 우선 1기인 백제의식의 잠복하기는 주로 일인학자에 조사되었던 초기 자료에 많이 나타난다. 이들 보고서의 설명에서 백제의 의식을 보여주고 있으나, 배경설화에는 구체적으로 나타나지 않았다. 이런 의식은 백제의식 삽입하기인 2기의 1950년 전후의 한국인에 의해 조사된 초기 자료에도 이어지고 있다. 다만 2기의 자료에는 배경설화의 앞뒤에 중시부 형태로 백제의식을 보여주기 시작하고 있다. 백제의식 드러내기인 3기의 1960년대 들어와서 배경설화는 백제란 역사적 배경과 결합하는 형태로 발전하게 된다. 특히 중요무형문화재의 선정 기준 중에 역사적 전통적이란 점, 그리고 지역적 특징을 강조한 지역적 향토지의 발간이란 점에서 더욱 백제의식 드러내기로 발전하기 이른다. 그 결과 은산별신제는 중요무형문화제 9호가 되었고, 특히 백제문화제와 결부되면서 배경설화의 백제의식 드러내기가 확산되기에 이른다. 한편으로 이를 통하여 배경설화의 고착화 현상이 이루어진다. 그리하여 백제의식 확산하기인 4기의 1970년대 이후에 배경설화에는 당연하게 백제의 복신장군으로 구체화되고 있다. 이런 특징은 민중들을 대상으로 하는 일반적 글에서 많이 나타나지만, 은산별신제 연구 논저에서도 3기에 활용하였던 배경설화의 자료들을 그대로 차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알 수 있다.
이런 배경설화에 나타난 전승양상의 검토는 추후 설화의 서사구조와 의미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은산별신제에 나타난 문학적 성격을 구명하기 위한 작업으로 제의 중에 읽는 축문(산신제이나 장군)이나 무속의례에서 불린 무가에 대한 연구도 병행해야 할 것으로 본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