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머리말
II. 百濟의 東明神話와 卒本扶餘
III. 卒本扶餘의 東明神話와 解慕漱
IV. 맺음말
요약
본고에서는 지금까지 고구려 계통 자료를 통애 이루어졌던 동명이라는 존재에 대해, 백제 계통의 자료로 생각되는 삼국유사와 삼국사기 백제본기의 자료에 주목하여, 이들 자료와 고구려 계통 자료의 비교를 통해 동명의 실체에 좀 더 다가가고자 하였다. 그 결과 삼국유사 에 나타난 졸본부여의 동명이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에 나타난 자칭 천제자 해모수와 연결될 수 있으며, 동시에 그가 백제의 遠祖로 백제 동명신화의 주인공이었음을 살펴볼 수 있었다.
졸본부여는 고구려가 자리잡았던 곳과 같은 지역에서 고구려 이전에 자리잡고 있었던 부여계 집단으로, 그 동안 고구려와 동일시하기만 했을 뿐 그 존재를 크게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고구려 계통 자료만이 아니라 백제 계통 자료와 중국측 기록 및 고고학 자료를 검토해본 결과, 고구려 건국 이전에도 그 지역에 세력집단이 있었던 것은 분명하며, 그 집단에 대하여 본고에서는 백제 계통 자료에 따라 졸본부여라는 명칭을 사용한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백제의 종족 계통을 두고 문헌에서는 부여계통으로 나타나는데, 한강유역의 적석묘로 대표되는 고고학적인 모습은 고구려 계통으로 나타나 서로 맞지 않는다는 문제의 해결에도 어느 정도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곧, 고구려 이전의 졸본부여 시절에도 적석묘는 사용되었고, 그들을 부여계통으로 분류할 수 있다면, 이 지역에서 남하하여 부여의 계승을 내세웠던 백제의 문화적 성격을 고구려로만 연관시키지 않아도 될 것이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