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사기』는 6세기 중반 이후에야 그들만의 정립상을 구현하게 된 삼국 본위의 역사물이다. 『삼국지』 등 중국사서의 동이전 기록 역시 당대 중국인들의 자기 역사 구성에 동원된 부수물에 불과하다. 삼국 이외의 실체들은 오직 삼국의 역사 전개 서상에서 종속변수로 취급되었던 것처럼, 동이의 단위체들은 중화적 세계 인식의 형식적 증좌로서 중국의 단대 왕조사에 주변적 편련을 남겼다. 『삼국사기』의 이른바 '초기기사'와 『삼국지』를 비롯한 중국사서의 삼국 관련 정보들이 우선 각각의 내부 논리와 정합성에 주의하여 점검되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점검의 강도는 동등하게 예리해야 옳다. 또한 개별 정보의 전거 추적과 형성의 맥락 파악을 예의 주시해야 한다.
특히 『삼국사기』의 경우, 허다한 오류와 착종과 의혹들은 '은폐된 의도'에서가 아니라 맹목적 문헌주의의 결과 빚어진 '비판의 결여'에서 비롯한다. 그러므로 오늘날 『삼국사기』 정보에 대한 비판이 역설적 의미의 또 다른 문헌주의로 회귀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른바 '초기기사'는 정보 이전에 어느 단계의 설명이었다. 그 당대적 설명의 내재적 논리에 대한 적확한 이해가 선행된 위에서 새로운 비판은 정곡을 얻으리라고 믿는다. 물론 현존 정보의 저층에 겹겹이 놓인 설명의 층위 가 운데 어떤 의도가 잠복되어 있을 가능성을 전면 배제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 검증이 난망한 의도조차 작위적 기년 설정보다는 특정 인물의 계보와 사건의 설명에 개업되었을 개연성이 더 크다.
무엇보다도 역사적 설명과 사유에서 객관에 대한 맹신을 경계한다. 연구자들 이 자부하는 서로 다른 객관이야말로 누추한 주관의 은폐일지도 모른다. 차라리 비판 대상 정보를 서술한 주체의 주관 영역을 당대적 설명의 형태로 섬세하게 성찰하는 것이 대상에 대한 객관적 논의일 것이다. 서술자의 관념에 유의할 때는 적어도 서술자의 '인식된 과거'에 다가설 수 있는 통로 발견을 전망할 수 있다. 그 통로를 매개로 '사실로서의 과거'를 겨냥할 것인바, 역시 검증 가능성 자체에 대한 확신은 더 긴 폭으로 유보할 것을 제안한다. 사서의 정보는 선택적 논의의 유력한 근거에 지나지 않으며, 연구자들의 설명은 늘 새롭고 분방하되 그러므로 설명의 설득력 여하는 사서의 몫이 아니다. (필자 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