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머리말
2. 백제 부흥운동과 ‘백촌강 전투’
3. 한․일 역사 교과서의 ‘백촌강 전투’ 서술
4. 맺는말
요약
학생들의 역사의식을 형성하는데 역사 교과서의 서술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나라 국사 교과서의 질과 양의 수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른 나라의 교과서와 비교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백촌강 전투’에 대한 한․일 양국 역사 교과서가 어떻게 기술하고 있는가를 살펴보았다. 동시에 주로 지원군 파병의 성격에서 다루어진 백촌강 전투를 백제 부흥 운동과 관련하여 파악하였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 객관적이 역사적인 실체 파악과 함께 바람직한 역사 교과서 서술 태도를 찾아보려고 하였다.
백제가 660년 나․당 연합군에게 패망하자 복신 등이 임존성을 중심으로 부흥운동을 전개하며, 일본에 원병 파병과 함께 왕자 풍의 귀국을 요청하였다. 이에 일본의 제명천황과 그의 아들 중대형황자는 지원병 모집에 적극 나섰다. 일본의 지원은 지원병 파견에 반대하는 일본 내 여론과 당과 정면으로 맞서야 한다는 부담 때문에 신중히 추진되었다.
왕자 풍이 귀국할 때 파병된 선발대 5000명과 추가로 파병된 27000여 명의 구원군은, 백제 부흥군과 백촌강 하구에서 나․당 연합군과 決戰을 하였으나, 당수군의 화공작전으로 대패하였다. 풍왕은 고구려로 도피를 하였고, 왜 지원군은 백제 유민들과 함께 본국으로 철수하였다. 백촌강 전투는 백제부흥운동은 물론 당, 신라, 왜 등 동아시아 국제 정세에 중요한 분수령이 되었다.
백촌강 전투를 일본의 검인정 역사 교과서는 최신의 연구 성과를 포함하여 상세한 서술을 하고 있었다. 특히 백촌강 전투에서 일본의 참패 사실도 그대로 기술하는 객관적 태도와 함께 동아시아 국제 질서 하에서 일본의 위치를 찾으려 하고 있다는 것을 살필 수 있었다. 이렇듯 일본의 역사교과서는 역사 교과서가 갖추어야 할 객관적 서술태도, 최근 연구 성과 수용, 역사를 보는 폭넓은 시각의 형성 등에 기여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다만 구원군에게 백제계 유민들이 포함되어 있는 사실들이 생략되어 있는 것은 한계로 지적된다.
반면, 한국의 국사교과서는 국정교과서 체제이기 때문에 갖는 서술 태도와 시각등에 한계가 많음이 지적되었다. 가령, 백촌강 전투의 전개과정, 규모, 의미 등에 대한 서술이 소략되어 있었고, 백제 부흥군의 요청에 따라 파병된 왜 지원군을 단순히 당의 시각에서 기술하여 객관성을 상실하였고, 흑치상지를 부흥운동의 핵심으로 기술한 것처럼 최근 연구 성과를 수용하는데 소홀하였다.
역사에서 객관적이 서술이 중요하듯이 학생들의 역사의식 형성의 기본이 되는 역사 교과서의 객관적인 서술이 더욱 강조된다. (필자 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