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백제에 대한 사유의 주요 토대를 이루는 『삼국사기』의 자질과 관련한 몇 가지 각성을 공유하려 하는 것이다. 우선 『삼국사기』의 막중한 자료 위상이란 명백히 우연적 환경에서 비롯한 것에 불과하다. 『삼국사기』의 사유는 서술 "대상의 진실"이 아니라 오직 인식 주체의"당대적 진실"일 뿐이기 때문이다. 어떤 정보이든 그것을 선택한 개별 주체들의 현실, 혹은 그들의 사유를 규정하는 당대 현실이 작동하고 있다. 따라서 『삼국사기』정보에 잠복되어 있는 기록 과정의 층위들에 대한 숙고가 긴요하다. 특히 백제인들은 경험 주체로서의 자기 설명 기회를 잃었고, 표상된 역사에 자기 기억을 남기지 못하였다. 전백제의 역사는 신라에 의해 조정되었고, 후백제의 역사 역시 고려에 의해 정돈되었다. 또한 백제사 주체의 자기 설명과 인식이 담긴 정보라 해도, 그것은 필연적으로 지배자의 관점에 충실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제 비록 비경험적 단서들일지라도 경험 주체의 목소리에 귀기울여야 한다. 『삼국사기』에 표상된 역사는 “타자를 향한 설명”이다. 그것은 본래 타자와의 인식 공유를 기대한다. 따라서 설명들은 의연히 객관을 표방하나, 그것은 특정 사건이나 인물의 행적 사이 혹은 주변 왕조를 포함한 역사의 제반 환경 조건 사이의 정합성에 먼저 주안한 것들이다. 당연히 합리적 인과 관계를 중시하고 보편적 논리를 겨냥한다. 반면에 경험 주체의 기억이란 “자신을 향한 설명”이다. 그 동안 간과되어 온 것은 그 표상화의 연쇄 과정을 심층에서 규정하고 있는, 그러면서도 정작 그 자체는 하나의 온전한 표상으로 드러나 본 적이 없는, 경험주체의 기억과 설명일 것이다. 이것을 이른바 “사의 감성 영역”으로 이해하고 부르려 한다. 그것은 표상된 역사의 직접 배면이거나 저층의 토대일 수 있는 까닭에 역사의 사유에서 심중하게 취급될 필요가 있다. 요컨대 삼국사기의 백제 관련 사료란 그 안에 잠복되어 있는 정보의 층위와 경험 주체의 설명 방식에 다가서기 위한 하나의 管見 혹은 통로라고 생각한다. (필자 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