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는 百濟史의 終焉 時點과 관련해서 연구가 시작되었다. 일반적으로 660년 7월에 의자왕이 羅唐軍에 항복한 때를 백제 멸망으로 云謂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조선 후기의 학자들은 백제인들이 무력으로써 국권을 회복하려고 하다가 실패한 663년 9월로 지목하였다. 이렇게 볼 때 국가회복운동의 정점에서 왕을 칭했던 풍왕은 백제 제32대 왕이 된다. 이후 唐에 의해서 의자왕의 아들인 扶餘隆을 수반으로 하는 정권인 熊津都督府가 출범했다. 그러한 웅진도독부는 신라의 공격으로 672년에 해체되었다. 웅진도독부의 종언은 백제사의 마침표로 지목되었다. 그런데 『삼국사기』나 『구당서』와 『신당서』 등에 보면 백제의 멸망과 관련해 그 영역이 신라 뿐 아니라 발해말갈로 분할되었다고 기술되어 있다. 그러나 이 구절을 誤謬로 간주하여 무시하거나 看過하는 경우가 많았다. 본고에서는 『삼국사기』 등의 사서에서 백제 멸망 관련 기사의 末尾에 적힌 문구가 지닌 의미를 적극적으로 재검토하고자 했다. 그럼으로써 백제에 설치된 웅진도독부가 해체된 이후 唐으로 옮겨간 그 유민들의 존재 방식을 새롭게 究明하고자 하였다. (필자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