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머리말
II. 강역획정 이전의 상황
III. 강역을 획정한 위치
IV. 강역을 획정한 시기
V. 맺음말
요약
『삼국사기』 백제본기 온조왕대 강역획정 기록을 지금까지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 지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백제에서는 온조왕 13년(기원전 6)에 ‘북쪽으로 패하에 이르고, 남쪽은 웅천을 경계로 삼고, 서쪽은 큰 바다에 닿고, 동쪽으로는 주양에 이르렀다’는 기사가 나온다. 이에 대하여 연구자들 대부분이 후대의 사실을 소급하였을 것이라는 의혹을 드러내면서, 강역을 정한 시기와 위치에 대하여 다양한 견해를 제시하였다.
강역을 획정한 시기에 대해서는 첫째, 온조왕대에 정하였다는 설, 둘째, 고이왕대에 일어난 일로 보는 견해, 셋째로는 근초고왕대에 사방영역을 정하였다는 견해가 있다.
사방으로 확장한 영역의 위치에 대해서도 다양한 견해를 제시하고 있다. 북쪽 영역인 패하에 대하여 대동강, 예성강, 임진강으로 보고 있으며, 동쪽 영역인 주양은 춘천이나 가평으로, 남쪽 영역인 웅천은 안성천이나 금강유역(공주)으로 보고 있다.
이러한 다양한 견해들은 문헌기록의 검토, 지명에 대한 분석, 고고학적 연구성과의 적용이라는 다각적인 접근 방법으로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각각의 견해는 바라보고 있는 관점이나 인식이 다르기 때문에 거기에서 드러나는 문제점 또한 표출되고 있어서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러나 온조왕대에 영역을 획정한 기록을 사실 그대로 보면, 백제가 건국하여 주변 세력을 통합하면서 성장하는 모습이 보이며, 그 가운데 백제가 영역을 확장해 가는 과정이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다. 따라서 그 시기에 대한 논란은 있지만, 백제본기에서 보여주고 있는 인식은 국가의 기본 영역을 온조왕대에 이미 확정하였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만 온조왕대 영역을 획정한 사실에 대하여 백제본기 초기기록을 바라보는 관점에 대한 인식의 폭을 넓혀 당시 역사적 전개 상황에 따라 강역의 확장 과정을 살펴본다면 불가능하였던 일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삼국사기』 백제본기 온조왕대의 기록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비록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고 하더라도 백제 초기사의 잃어버린 흔적들을 복원하는데 어떠한 관점에서 출발하여야 하는지에 대한 숙고(熟考)가 필요하다고 본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