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머리말
II. 大王號 사용과 神聖族 觀念의 대두
III. 주변 세계에 대한 인식
IV. 맺음말
요약
백제의 자존적인 천하관은 대내적으로 대왕의식과 골족의식의 고양으로 나타났고, 대외적으로는 주변 세계에 대한 차등의식을 통해 성립되었음을 밝혔다. 무령왕은 중국 왕조를 크게 의식하지 않고 필요에 따라 군주호․장군호나 자존적 용어를 대내외적으로 사용하였다. 이는 대내외적으로 백제국가의 신성성과 왕권의 정통성을 내세우려는 정치적 의도와 깊은 관련이 있음을 밝혔다.
무령왕은 자신의 취약한 신분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왕위계승에 대한 정통성과 합법성을 명분상으로나마 확보하려고 하였다. 이러한 필요성에서 자신과 생모의 신분을 개로왕의 혈통에 직접 연결시키는 계보 조작을 하였다. 그리고 권력기반을 강화하기 위해 무령왕 소가계 중심의 골족을 중시하였다. 골족은 君號를 갖고 외교사절이나 지방의 통치 거점인 담로에 지방관으로 파견되었다. 배타적인 골족의식을 고양시킴으로써 왕권의 신성성을 표출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무령왕대의 천하관은 영토관념에서도 표출되었다. 무령왕 소가계집단이 설정하였던 천하 세계의 범위는 근초고왕이 이룩한 영역국가로의 회귀였다. 이러한 의도에서 대고구려 관계에서는 실제와는 상관이 없이 백제의 한강유역영유설을 주장하게 되었다. 무령왕은 이러한 근초고왕대의 영역관을 실천에 옮기기 위해 즉위초의 정변을 수습한 후 곧바로 고구려에 대한 선제공격을 감행하였다. 백제의 이러한 자세 변화는 무령왕이 고구려와의 전쟁을 통해 한성고토에 대한 실지회복 의지를 분명하게 천명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 목적은 강적 고구려에 대응할 수 있는 유일한 나라라는 것을 대내외적으로 과시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이는 백제 중심의 천하관을 표출한 것이다. 여하튼 무령왕은 고구려와의 몇차례 전투를 통해 한성고토를 완전히 수복하지는 못하였지만 고구려의 기선을 제압하고 남진을 강력하게 저지할 수 있는 성과를 이룩하였다. 백제의 고구려에 대한 강국의 선언은 고구려에 맞설 수 있다는 자신감을 표출한 것이었다.
백제는 신라와 가야 제국을 포함한 남방지역의 나라들을 ‘방소국’으로 규정하고 그의 부용국으로 인식하였다. 이는 대등한 관계로 인식한 대고구려 인식과는 달리 백제국가의 우월성을 과시하는 바탕위에서 상하의식이 표출된 것이다. 남방지역의 주변국들에 대한 백제의 이러한 우월의식은 바로 백제의 천하관을 보여주는 것이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