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머리말
2. 茨田堤의 어원과 위치
3. 자전제 설화의 생성과 변화
4. 茨田氏의 史的 전개와 出自改變
5. 맺음말
요약
자전제는 ‘茨田連-茨田勝’으로 조직된 秦氏系 茨田氏가 秦人을 이끌고, 정천의 치수 사업을 진행한 결과물이다. 이에 축조 시기도 진씨가 이지역의 충적평야에서 활동하기 시작한 5세기 후반 경으로 추정된다. 자전제 공사는 자연제방을 활용하며 물의 양이 늘고 흐름이 빨라지는 斷間 지역을 중심으로 진행되었으며, 淀川의 상류인 伊加賀에서 출발하여 정천이 크게 분류하는 太間과 정천이 古川으로 다시 분류되는 지점인 平池 부근에 이르렀다.
자전제 축조 이후 자전련씨는 정천 수계와 그 주면의 경지를 활용하며 北河內 지역의 호족으로 성장하였다. 그 결과 繼體의 즉위에 일조할 정도의 세력을 가지제 되었으며, 大王家와의 연결통로도 확보하는 존재가 되었다. 이러한 이력을 바탕으로 자전씨는 天武朝에 宿禰姓을 받았다.
그러나 茨田宿禰씨는 이후의 史錄에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데 비해, 奈良시대가 되면 無姓의 자전씨가 宿禰姓을 받고, 敍位, 任官되는 사례가 상당수 등장한다. 단, 奈良시대에 급성장한 자전숙녜시는 무성자였기에 天武朝에 숙녜성을 받은 본종가와는 계통을 달리한 방계의 일족이었다.
奈良시대에 급성장한 소위 ‘신흥자전숙녜’씨 일족은 중소씨족이었지만, 『新撰姓氏錄』의 편집책임을 맡은 萬多(茨田)親王과의 관계아 秦씨와 多(朝臣)씨의 밀접한 관계를 기초로 다씨와 동조 씨족으로 자리매김하면서 皇別씨족으로 出自를 바꾸는데 성공하였다.
요컨대 일본 사회가 율령관제의 추진과 함께 점차 기존의 伴造씨족이 세력 기반을 상실한데 비해, 새로운 분야를 개척한 사람들이 새롭게 지위의 향상을 이루어 가는데, 이러한 상황은 자전씨에 관한 史錄을 추적한 결과와도 일치된다. 이러한 자전씨의 활동상을 추적하는 작업을 통해, 한국계 씨족의 일본열도에서의 삶을 조명하는 하나의 단서를 마련하였다. (필자 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