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1. 370~380년대 고구려−백제의 각축전과 접경지역 형성
2. 광개토왕대 고구려와 백제의 전쟁에 관한 사료 검토
1) 삼국사기에 기술된 고구려과 백제의 전쟁양상
2) 「광개토왕릉비」 영락6년조의 서술구조와 정복범위
3. 5세기 초엽 고구려−백제의 국경 변화
맺음말
요약
고구려와 백제가 370~380년대에 치열한 각축전을 전개하며 본격적으로 접경하기 시작했음을 파악했다. 이때 서해안 방면에서는 재령강 예성강의 분수령인 멸악산맥을 중심으로 국경이 형성되었고, 백제 동북방에서는 고구려에 예속된 예(穢)를 매개로 임진강 상류의 평강(平康) 일대에서 간접적으로 대치하였다.
390년대에는 고구려가 예성강-임진강 유역을 장악한 다음, 한강하류-서해안 일대 및 북한강 수계를 통해 백제 도성까지 진격했다가, 백제의 반격을 받고 임진강 유역으로 퇴각했다. 그리하여 5세기 초엽 양국의 국경이 서해안 방면에서는 임진강-한강 분수령 지대에서 형성되었고, 영서지역에서는 고구려가 북한강 수계까지 남진하는 양상을 띠었다. 다만 광개토왕릉비에는 광개토왕이 정복한 최대 범위를 기술한 반면, 백제측 사료를 전하는 삼국사기는 고구려의 백제도성 공략을 의도적으로 누락시켰다.
고구려 광개토왕의 남정에 따라 양국의 국경이 크게 변동했던 것이다. 다만 4세기 후반이나 5세기 초엽 모두 양국의 국경은 큰 강의 분수령(分水嶺)이나 수계(水系)를 중심으로 형성되었고 또 변동했다. 이는 당시 양국의 국경이 험준한 지형 장애물을 중심으로 형성되었고, 오늘날처럼 명확하게 선으로 그어지지 않았음을 시사한다.
또한 급작스러운 국경 변화로 인해 국경이나 변경에 대한 양국의 인식도 크게 변화했을 텐데, 백제가 고구려의 도성공략을 의도적으로 누락시킨 사실은 이러한 가능성을 시사한다. 전체적으로 백제의 국경은 도성 방향으로 가까워진 반면, 고구려의 국경은 영역확장에 따라 도성에서 더 멀어졌다. 이에 따라 백제는 위기의식을 해소하기 위해 도성에 가까워진 국경관념을 다변화시키려 했을 가능성이 높다.
반면 고구려는 확대된 영역과 주민을 효율적으로 지배하기 위한 방안을 다각도로 모색하고, 이에 따라 다양한 변경인식도 생성되었을 것이다. 고구려가 정복한 백제지역의 주민집단을 족속계통에 따라 한(韓)과 예(穢)로 구분하여 파악한 사실은 이를 잘 보여준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