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령왕(재위 501~523)은 백제의 중시조(中始祖)이다. 1971년에 발견된 무령왕릉은 고대 동아시아의 국제관계와 한국고대사를 조명하는 중요한 절점이다. 본고에서는 간지도(干支圖)가 무령왕릉의 중요 문제를 풀 수 있는 열쇠가 될 수 있다고 보고 무령왕릉 지석(誌石) 2개 4면의 상호관계에 집중하여 간지도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였다. 무령왕릉 간지도는 서쪽 7개 방위가 표시되지 않은 특별한 지도이다. 이 논문은 지금까지 그렇게 보지 않았지만, 간지도를 매지권과 같이 상하로 돌려 읽는 것이 순리라고 생각하고, 이 같은 방법을 통한 간지도 해독의 가능성을 제시해보고자 하였다. 간지도를 상하로 돌려 읽는 기초접근으로 인해 다음의 몇 가지의 추정이 가능하였다. 첫째, 왕릉이 남북방향이기 때문에 간지도 상의 서쪽은 북쪽으로 놓이고 왕과 왕비가 있는 능실을 향한다. 둘째, 왕과 왕비는 머리를 남쪽으로 두고 북면하고 있기 때문에 간지도 상의 서쪽이 가리키는 방향과 그들이 바라보는 곳이 같다. 셋째, 간지도에서 생략된 방위는 24방위도에서 7개 ‘곤신경유신술건(坤申庚酉辛戌乾)’임을 찾았고 무령왕릉의 지석은 분명한 규칙에 따라 만들어졌음이 증명되었다. 종합하면 백제의 염원과 무령왕의 고토회복에 대한 의지를 담아 찬란한 한성백제를 향하여 북상하고자 하는 원대한 꿈이 무덤으로까지 표현되었다. 무령왕릉 간지도는 단순한 방위도가 아니고 무령왕과 백제인의 삶과 염원이 함축되어 있는 비밀지도이다. 간지도의 서쪽은 최종적으로 북쪽 한성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된다. 무령왕의 의중에는 가고자 한 한성이 곧 서방정토(西方淨土)였고, 죽어서도 한성백제에서 부활하겠다는 무령왕의 뜻과 백제인의 의지가 함축되어 있는 것이다. 그것은 곧 무령왕은 죽지만 후대의 왕들이 한성백제를 부활시키고 선조들이 있던 한성백제에 다시 무덤을 세우겠다는 고토회부(故土回復)과 귀장(歸葬)에 대한 기대를 암시한다. 이렇게 해석하면 무령왕릉에서 간지도는 어느 유물보다 가장 중요한 무령왕릉 연구의 지표이다. (필자 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