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1. 交易 據點의 開設 : 4~5세기
2. 占領과 附庸化의 竝行 : 6세기
3. 征服戰爭에 의한 膨脹 : 7세기
맺음말
요약
본고에서 고찰한 바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4세기 중엽 근초고왕 대에 백제는 중앙집권화를 완비하고 대외적인 팽창을 시작하여 전북 金堤-古阜線까지 영토를 넓혔으며, 전남 서해안의 해남․강진과 경남 김해․창원 지역에는 기존의 마한 및 가야 제국들과 협력하여 해당 지역에 백제의 對倭 교역 거점을 설치함으로써 신라에 대한 견제를 도모하였다. 그러나 4세기 말 5세기 초에 고구려군의 공격을 받아 가야연맹의 중심지가 파괴됨으로써 백제는 경남 지역의 교역 거점을 상실하였다. 2) 5세기 전반에 백제는 전남 지역의 거점을 중심으로 제한적인 대왜 교역을 이루었으며, 중엽 이후로는 섬진강 유역의 가야 세력들과의 협조 아래 좀 더 활발한 교통이 가능하였던 듯하다. 그러나 5세기 후반에 고구려에 의해 백제 수도 漢城이 함락되고, 가야 지역 교통의 중개를 맡았던 木滿致가 政爭에서 패배함으로써 백제-가야-왜의 교통로는 다시 두절되었다. 3) 5세기 말 6세기 초에 백제는 檐魯制를 정비하여 전남 서부에 대한 영역화를 완료하고, 전남 동부와 전북 동부 일대를 경략하였다. 그러자 이 지역의 후기 가야연맹 소국들이 백제에게 귀속되었고, 이에 대해 대가야는 섬진강-소백산맥을 경계로 방어를 하며 반발하였다. 4) 530년대에 백제는 가야 지역 내의 분열을 틈타 乞乇城 및 久禮牟羅城(칠원)에 군대를 진주시켰으며, 方-郡-城體制를 마련하여 섬진강 유역 일대와 경남 서남부의 河東, 丹城, 宜寧 일대에 지방관을 설치하고 南方 久知下城(장성군 진원면)을 통해 이를 관할하였다. 5) 540년대에 백제는 나머지 가야 전역을 달래어 屬國으로 만들려고 노력하여 550년대 초에 이들을 附庸化시키는데 성공하였으나, 554년의 관산성 전투 패배와 562년의 가야연맹 몰락으로 이 지역을 모두 신라에게 빼앗기고 말았다. 6) 백제는 중앙과 지방에 대한 제도를 재정비한 후에 7세기 초 이래로 정복 전쟁을 통하여 옛 가야 지역을 복구하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신라와 지속적으로 전쟁을 치룬 결과 642년에는 옛 가야 지역을 모두 군사적으로 점령하였다. 7) 7세기 중엽에 백제는 낙동강 유역에서 신라와 공방전을 벌이면서 가야 지역을 방어하고 있었으나, 660년에 나당 연합군의 공격으로 수도가 함락되면서 멸망하고 말았다. 그후 3년 뒤인 663년에 가야 지역에 대한 소유권은 다시 신라에게 귀속되었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