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사기 백제본기 근구수왕 즉위조에는 369년 근구수의 치양전투 무용담이 실려있고 이는 황해도 신계지방 태자 말자취에 관한 전승을 채록한 것인데 비교적 상세하고 생동감 있게 전해준다.. 이는 영웅설화로 볼 수 있으며 후대 백제인들이 고구려에 수세적 입장에서 적대감이 고조되었을 때, 근초고왕, 근구수왕대로 회귀하여 열등감을 극복하려 하였다.
근초고왕대 백제-고구려 전투양상을 분석하면 거의 고구려 선공으로 발생했으며 이 때마다 백제는 적극 공세로 고구려에 일대 타격을 가하였다. 태자 근구수는 잇달은 승리와 탁월한 군사 지휘능력으로 왕위계승권자로서의 정치사회적 기반을 구축해 나갈 수 있었다.
근구수가 군사, 외교활동에서 주도적 역할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근초고왕이 대외활동을 벌린 시기에 그의 연령이 비류왕의 세계와 재위 년수 검토 시, 고령기에 있던 점이 우선 고려된다. 근구수왕 부자의 참전 기사를 볼 때, 근구수의 단독 활동일 경우도 있기에 근구수가 일임하여 주도적인 활동을 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근초고왕은 직계왕통에 의해 왕위계승을 염원하였다. 이에 근구수에게 권력 향방을 좌우하는 군사, 외교권을 위임시켜 실전 경험을 쌓게 하고 왕위 계승권자로서의 위상과 권위 확립 계기를 만들어줬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