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서언
II. 웅진시대의 지방통치제도
III. 웅진시대의 중앙귀족과 지방세력
1. 중앙귀족 해씨 진씨의 전횡
2. 지방세력 연씨 백씨 사씨의 등장
IV. 웅진시대 첨로제의 실상
V. 결론
요약
백제의 지방제도를 국내의 사료에서는 모두 성을 중심으로 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정사에서는 담로제와 방․군․성제를 기록하고 있어 백제 지방제도에 대한 이해의 심도를 더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정사에 기록되고 있는 담로에 대하여 그간 새로운 제도로 그의 의미를 부여 함으로서 백제의 한정된 시기에 행하여 졌던 제도로서 이해하여 왔다. 그러나 이 중국정사에 기록되고 있는 담로라는 것은 새로운 한정된 시기적인 제도가 아니라 백제어로 성을 중심으로 하는 중국과 다른 백제의 특수한 지방제도를 기록한 것으로서 국내사료에서 살필 수 있는 성을 중심으로 하였던 제도와 동일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중국정사에 또 등장하는 방․군․성의 제도는 기존의 성을 중심으로 하는 담로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백제의 지방통치에서 담로라는 중국정사의 기록에 대하여 너무 의미를 부여하여 백제가 어느 한정된 시기에 시행하였던 특수한 제도로 이해하여서는 안될 것이다. 웅진시대의 지방통치 역시 이러한 성을 중심으로 하는 제도였다. 그런데 한강유역의 상실과 정치적인 혼란등으로 한성시기의 많은 담로들이 그의 기능을 상실하였거나 또한 빼앗기므로 인하여 웅진시대에는 지방을 통치하기 위한 거점성들이 22개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웅진천도는 기존의 귀족세력들에게 커다란 변화를 초래했다. 우선 천도 직후에는 한성시대에 왕비족으로 행세하던 해씨와 진씨는 역시 중앙의 귀족으로 확고한 지위를 다시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웅진으로 도읍을 천도하자 이지역의 지방세력들이 또한 정계에 등장하였으니 바로 연씨, 백씨, 사씨 들이다. 그러므로 웅진시기는 기존의 구귀족과 천도로 인한 새로운 귀족들이 정계에 등장하는 귀족세력의 재편이 이루어지던 과도기적 시기였던 것이다. 이러한 백제의 지방제도와 지방귀족들의 중앙진출은 지방제도의 운영에도 변화를 초래하고 있다. 기존의 담로(성) 중심의 지방통치제도에서 필요에 의하여 새롭게 만들어지는 담로(성)들과 이들에 파견되고 있는 지방관들의 서열이 차등에서 담로제도 시대에 따른 변동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아마도 이러한 웅진기의 담로(성)제도는 사비시대의 방군성 제도로 이행하는 과도기적인 시기였을 것이다. 즉 방․군․성 제도에 이르러 백제의 담로(성)을 중심으로 하였던 지방제도는 완성을 보게 되는 것이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