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가 大和倭에 불교를 포교한 552년 이전에는 백제는 백제 관인과 오경박사를 파견하여 大和倭의 정치를 지도하였으나 불교 포교 이후에는 이러한 정치 지도와 함께 불교 지도도 함께 파견되었으므로 백제의 大和倭지도 감독은 일층 강화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백제는 관인․오경박사․승려 등을 정기적으로 또는 부정기적으로 파견하여 大和倭의 정치와 불교를 지도함과 동시에, 557년, 588년, 607년 등 적어도 3차에 걸쳐 백제 관인이 寺工․瓦工 등의 사원 건립 전문인을 인솔해 가서 法興寺․(飛鳥寺)法隆寺 등을 건립하여 그것을 경영해 왔다. 백제는 또 일본의 僧尼를 불러다가 교육시킴과 동시에 백제 승려를 단체 또는 개인단위로 大和倭에 파견하여 포교를 하게하고 백제 승려를 大和倭불교의 지도자로 임명하였다. 여기에 대하여 高句麗와 大和倭 간의 국가적인 불교 관계는 전혀 없으며 고구려승이 개인 자격으로 大和倭에 건너가 불교를 포교할 수준의 것이었는데, 이러한 고구려승 가운데는 慧慈처럼 大和倭의 불교를 지도하는 백제 본국의 주목을 받아 백제승과 함께 大和倭불교의 지도자가 되는 승려도 존재하였다. 新羅는 백제와는 물론 고구려와도 달라 개인 자격의 신라승이 大和倭에 가는 일도 없었으며 단지 大和倭가 신라에서 오는 사람으로부터 불상․불교 용품을 3회 정도 구매할 정도가 양국 간의 불교관계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