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머리말
2. 고고학적 지표의 변화
1) 변화의 내용
2) 전기 횡혈식석실분과 전방후원형고분
3) 후기 횡혈식석실분
3. 문헌 자료의 재검토
1) 5세기의 국제 정세와 영산강유역
2) 백제의 영산강유역 진출과 편제
4. 맺음말
요약
영산강유역 고대사회를 '옹관고분사회'라 칭하기로 하고, 그의 해체와 백제로의 편입 과정을 고고 및 문헌 자료의 비교·검토를 통해서 살펴보았다.
먼저 5세기 중·후반부터 영산강유역에 고고학적 지표의 변화가 타나남을 주목해 보았다. 그 고고학적 지표의 변화란, 첫째, '옹관고분사회'의 중심 맹주세력이 자리한 반남 지역에서 고분과 성곽 등이 양과 질의 면에서 크게 발전된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 둘째, 백제 계통의 전기 횡혈식석실분과 왜 계통의 전방후원형고분이 '옹관고분사회'의 주변부에서 나타나기 시작한다는 점이 그것이다. 바로 이러한 고고학적 지표의 변화에 대하여, 백제와 왜 세력이 '옹관고분사회'에 경쟁적으로 접근해 오고, 그 중심 맹주세력이 이를 저지하여 기왕의 영도권을 유지 강화하려고 노력한 흔적을 보여주는 것으로 파악하였다. 이어서 6세기 중반 이후에 옹관고분을 위시하여 전기 횡혈식석길분과 전방후원형고분이 모두 소멸하고, 대신 전형적인 백제 양식의 후기 횡혈식설실분이 '옹관고분사회'의 전지역에 새로이 나타나는 현상을 주목하고, 이를 백제의 영산강유역 완전 영역화의 지표로 이해하였다.
다음에 문헌 자료의 검토를 통해 5세기 중·후반에 백제와 왜가 중국 남조 왕조를 주요 파트너로 하는 해양 교역권의 주도권을 둘러싸고 경쟁관계로 떠올랐던 점을 주목하고, 해양 교역로의 요충지인 영산강유역 '옹관고분사회'의 주변부에 백제계의 전기 횡혈식석실분과 왜계의 전방후원형고분이 5세기 중·후반경에 나타나기 시작하는 점과 관련된 사실로 이해해 보았다. 이어서 백제가 점차 해양 교역권의 주도권을 확보해 간 것을 주목하고, 이와 관련하여 백제의 영산강유역 진출과 편제의 과정을 살펴보았다. 그 결과 백제는 6세기 중반경에 5방제를 실시하면서 영산강유역을 남방의 관할 하에 두어 완전 지배하게 되었음을 살폈는데, 그 시기가 영산강유역 고분이 후기 횡혈식석실분으로 단일화되는 시점과 일치한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본고에서는 '옹관고분사회'의 해체의 문제 초점을 맞추었으므로 '옹관고분사회' 자체의 성립과 발전의 과정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거론을 최소화하였다. 이 문제는 다음 기회로 미루어 둔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