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머리말
II. 비류왕의 왕위계승
1. 출계 문제
2. 지지세력에 대한 검토
III. 정국운영과 정치적 한계
1. 비류왕의 왕권 강화노력
2. 진씨세력의 재등장과 왕권의 약화
IV. 맺음말
요약
백제사상 중앙 중심의 지배체제가 수립되기 시작하는 시기는 고이왕대로 볼 수 있으며, 그러한 성장을 토대로 근초고왕대는 중앙집권적 귀족국가체제로 전환하고 있다. 한편 재위기간이 40년에 달했던 비류왕대의 정국운영을 검토한 결과 근초고왕대 발전의 토대는 이미 비류왕대부터 마련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비류왕대의 정치․경제․군사적인 성장의 바탕위에서 근초고왕은 활발한 대내․외정책을 수행할 수 있었던 것이다. 본고에서 밝혀진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비류왕은 초고계인 점은 인정되나 구수왕의 제2자는 아니었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사실은 그가 ‘令譽流聞’하였다는 점과 사후 고이계인 계왕이 즉위하고 있는 점, 그리고 《삼국사기》 백제본기에 기록된 제2자의 용례는 혈연관계를 전왕조와 연결시키기 위해 의제적으로 사용된 것이라는 점 등을 통해 추정된다.
둘째, 비류왕의 출계는 초고계의 방계출신으로 고이계와 인척관계에 있었을 가능성이 크며, 이러한 신분상의 특성을 토대로 정치적 위상을 확보함으로써 왕위를 계승할 수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셋째, 비류왕을 추대한 신민세력으로는 범초고계의 왕족을 비롯하여 해씨와 고이계 우씨세력 일부가 포함되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이들 정치세력의 특징은 일정한 재지적 기반과 사병적 성격의 군사력을 소유하고 있었으며, 이를 토대로 왕위계승에도 관여하여 유력한 중앙 정치세력을 형성할 수 있었다.
넷째, 비류왕대의 정국운영은 크게 전․중․후기로 구분하여 검토할 수 있었다. 전기는 재위 13년까지로 비류왕의 입지를 확립하는 시기이며, 중기는 30년 이전까지로 왕권의 확립을 통한 주도적 정국운영이 이루어진 시기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비류왕 중기는 백제에서 경제적 발전이 크게 이루어졌던 시기로 주목된다. 후기는 재위 30년 이후부터 薨去할 때까지로 진씨세력의 등장으로 인한 비류왕의 왕권위축과 아울러 진씨세력을 지지기반으로 한 초고계 직계인 근초고왕이 대두하는 시기이다. 비류왕은 재위 전․중기를 거치면서 어느 정도 왕권의 확립을 이룰 수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중앙집권적 통치체제를 확립하지는 못하였다. 이는 유력한 정치세력들과 그들이 소유하고 있었던 군사력을 왕권하에 완전히 편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