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Ⅰ. 관산성전투의 역사적 배경
Ⅱ. 전투의 전개과정
Ⅲ. 전투의 승패요인과 그 결과
맺음말
요약
신라와 백제의 관산성 전투에 대해 살펴보았다. 당시의 역사적 상황과 전투의 전개과정, 전투의 결과와 그 영향 등에 대해 알아본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었다.
첫째, 당시 중국은 위진남북조 시대로 갈라져 있었던 시기였고, 고구려의 국내외 혼란을 틈타 백제와 신라는 그 때까지 지속된 동맹관계의 힘을 빌어 고구려에 빼앗겼던 한강 유역을 되찾았다. 그러나 신라는 백제가 차지하고 있던 한강 하류 유역을 공격, 차지하여 동맹관계가 깨질 위험성이 있었다. 이에 백제는 신라에게 왕녀를 보내 동맹을 확인하고 신라로 하여금 방심토록 했다. 그리고 일거에 군사를 몰아 관산성을 공격하였던 것이다.
둘째, 이렇게 시작된 관산성 전투는 백제와 신라의 이해관계에서 비롯되었지만 실제 전투에 참여한 것은 양국 뿐 아니라 가야와 왜도 끼어 있었다. 가야는 이미 백제에 부용화된 상태였기 때문에 참전하였고 왜는 백제의 요청과 가야와의 관계 때문에 참전하였다. 그리하여 백제는 가야․왜의 군사와 연합부대를 편성하여 관산성을 공격하였던 것이다. 이 전투는 대체로 4단계로 진행되었다. ①여창의 군대가 출동하여 관산성 함락, ②백제의 침략을 받고 신라가 전군을 동원하여 전투 준비, ③성왕이 뒤따라 온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신라의 군사가 매복했다가 성왕을 잡아 살해, ④신라가 총공격을 하여 관산성을 탈환한 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 이러한 전투과정 속에서 여창은 겨우 포위망을 뚫고 본국으로 도망하였다.
셋째, 이 전투에서 백제가 패배한 것은 왕이 단 40여기로 왕자 여창을 보기 위해 출동했다는 것과 이 전투에 대한 왕족과 귀족이 견해가 일치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수도의 천도로 인한 대규모 토목공사와 빈번한 전쟁으로 인한 농민과 군사의 피폐함도 있었다. 반면 신라는 새로이 귀족으로 편입된 금관가야 계열 김무력의 활약, 영토확장에 대한 진흥왕의 강력한 으지, 그리고 이사부․거칠부 등과 같은 명신들의 적극적 협조 등으로 인해 전투를 승리로 이끌 수 있었다. 이 전투의 결과로 백제는 그 때까지 영향력을 행사해 오던 가야 지역을 잃고 신진 귀족세력들이 발호하면서 왕권이 위축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또 신라에 대한 무리한 복수전으로 결국은 멸망의 길을 걷게 되었다. 반면 신라는 이 전투의 승리로 가야 지역을 획득하게 되었고 영토 확장에 대한 자신감을 얻어 함남 안변 근처까지 진출, 진흥왕순수비를 세우게 되었다. 또 신라 내부에서는 김무력 가문이 급부상하여 후일 김유신과 김춘추에 의한 반도통일에까지 이르게 되었던 것이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