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머리말
Ⅱ. 7세기 전쟁의 史的 背景
Ⅲ. 전쟁의 전개과정과 결과
Ⅳ. 전쟁과 체제변화의 要因
Ⅴ. 맺음말
요약
7세기 동아시아의 국제전을 신라의 백제통합에 따른 남북국의 성립과정으로 파악하고, 이 전쟁이 차지하는 의미를 중앙집권체제로의 지향이라는 관점에서 검토하였다.
7세기 전쟁에 대해서는 서로 다른 관점이 있었다. 하나는 신라삼국통일론이다. 한계로는 외세이용의 비자주성과 통일영역의 불완전성을 거론하는데, 이것은 신라의 백제통합과 고구려고지에서의 발해건국이라는 남북국성립론으로 이해하면 굳이 지적할 필요가 없는 신라삼국통일론 위주의 연역적 한계였다. 그리고 신라의 통일이 갖는 의의로는 민족형성의 토대와 민족문화의 기반 조성에서 찾고, 민족사적인 의미를 강조하였다.
이러한 7세기 전쟁이 한국사의 시대구분적 의미를 담보하기 위해서는 삼국 말기, 특히 신라 중고기의 사회변동에 유의해야 한다. 이는 귀족합의체제에서 대왕집권체제로의 전환에 따른 신진․기성귀족세력의 대립과 갈등이 대내적 모순으로 전화한 데서 기인한다.
이러한 대내적 모순에 삼국간의 쟁패라는 대외적 모순이 중첩되는 과정에 7세기 전쟁이 위치하고 있었다. 이 전쟁에는 중국의 수․당, 일본의 대화조정까지 개입함으로써 국제전의 양상을 띠었다. 이 과정에서 백제는 멸망되었다. 백제유민은 대화조정과 연계하여 백제부흥운동을 일으켰으나, 내분과 백촌강전의 패전으로 인해 와해되고 말았다.
한편 당은 고구려에 대한 공격을 감행하였다. 그러나 목적을 달성할 수 없었던 당은 신라와의 연합작전과 남생 형제에 대한 회유․이간공작을 통해 숙원을 이룰 수 있었다. 당의 고구려고지에 대한 지배는 안동도호부의 통제하에 도독부와 주․현을 두었으나, 내지로의 사민과 당 관인의 참여가 특징이었다. 이러한 당의 점령정책에 대해 고구려유민은 신라의 지원 아래 반당운동을 전개하였으며, 반당운동의 소멸 이후에는 백제통합과 고구려점령이라는 서로의 기본전략을 관철시키려는 본격적인 나․당전쟁이 시작되었다. 이 과정에서 신라는 백제통합을 성공적으로 수행하였고, 고구려점령에 실패한 당의 안동도호부가 신성으로 철수함으로써 발해가 건국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었다.
신라는 이 전쟁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군사지휘체제에 당의 總管制가 도입되어 왕에게로의 권력집중이 가능해졌고, 본격적인 군역동원이 실현됨으로써 개별인신지배를 촉진하였다. 그리고 전공포상체계가 상징적인 관위와 생산물인 租․粟의 지급으로 변화․관행됨으로써 토지분급제와 녹봉제를 실시한 수 있는 토대가 마련하였다.
결국 7세기 동아시아의 국제전은 민족사상에서 삼국으로부터 남북국의 성립으로 귀결되었고, 한국사적으로는 고대에서 중세적 중앙집권체제로의 전환이라는 사회변동을 유도하였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