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머리말
2. 『三國史記』 羅·濟本紀 공유 교전기사의 비교와 시기구분
3. 1世紀代 羅·濟交戰의 戰場과 실제 세력
4. 2~3世紀代 羅·濟交戰의 接近路와 전투수행 방법
5. 맺음말
요약
『삼국사기』에 보이는 1~3세기의 나․제교전을 제Ⅰ기(64~85년)와 제Ⅱ기(165~283년)로 나누어 검토해 보았다. 먼저 신라와 백제의 공유 교전기사를 비교해 본 결과 제Ⅰ기의 사료들은 신라본기의 내용이 백제본기에 단순 補入되었을 가능성이 높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편 제Ⅱ기의 교전기사 가운데에는 예외적인 경우도 종종 나타나지만, 역시 대체로 신라본기를 토대로 백제본기를 작성하였음을 인정할 수 있었다.
우선 제Ⅰ기 교전과 관련해서는 실제 교전세력을 차령산맥을 우회하여 청주 일대로 남하한 백제와 소백산맥의 東麓에 위치하고 있었던 沙伐國․甘文國 등으로 규정하였다. 아울러 제Ⅰ기의 교전세력의 실체를 밝히는 과정에서 종래 ‘舊辰國遺民移動設’의 문제점을 지적해 보았으며, 최근에 제기된 바 있는 ‘마한설’도 비판적으로 검토하였다.
다음으로 교전 제Ⅱ기에서는 접근로의 개념을 염두에 두고 당시 백제군의 機動線을 ‘秋風嶺路’․‘化嶺路’․‘竹嶺路’ 등의 시대순으로 설정하였다. 또한 제Ⅱ기의 교전에 투입된 신라 將帥들을 검토함으로써 백제왕의 전투에서 신라가 ‘據點의 재지세력’을 이용한 전투 수행 방법을 채택하였음을 밝혔다. 仇道․忠萱․直宣 등으로 대표되는 거점의 재지세력들은 官等所持者로서 백제와의 교전을 담당하였으며, 이들은 이후 중앙 정치세력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아울러 2세기 후반 이후의 나․제교전에서 나타나는 관등소지자들의 본격적인 활약은 신라(사로국)의 진한 소국 병합과정에서도 확인되는 바로 당시 신라의 정치적 변화․발전을 시사하는 현상임을 지적해 보았다.
이상의 검토를 통해 『삼국사기』 초기기록의 나․제교전도 긍정적으로 이해될 수 있음을 확인하게 되었다. 즉 백제와 교전한 세력을 제Ⅰ기에는 소백산맥 동록의 진한 사벌국․감문국 세력으로, 제Ⅱ기에는 재지세력을 활용한 신라로 비정하게 되면 굳이 『삼국사기』초기기사의 기년을 수정하지 않아도 1~3세기의 나․제교전을 인정할 수 있는 것이다.
1세기초 팽창하려던 백제에 대해 사로국을 중심으로 한 진한 사회가 어떻게 대응하였는지를 보여주는 역사적 기록이 바로 『삼국사기』 사료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 교전의 양상은 1~3세기 사이 백제와 신라의 정치․군사적 역량차를 시사하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백제의 대외팽창 노력은 사로국을 중심으로 한 진한 사회의 군사․정치적 유대를 강화하고 통합을 가속화시키는 요인이 되지 않았나 짐작된다. 1~3세기 사이 사로국이 주변의 진한 소국들을 복속시키는 일련의 작업도 사로국을 중심으로 진한 제국의 백제군에 대한 군사적 대응 과정에서 진행되었던 것이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