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사 전개과정 속에서 지방통치제도로서 5부제, 성․촌제, 담로제, 왕․후․태수제, 방․군․성제 등이 존재하였다. 그러나 온조왕대 구획된 것으로 기록된 ‘부’의 성격에 대해서는 연구자들의 의견이 상충하고 있는데 이는 백제 뿐 아니라 고구려․신라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즉, 삼국 초기의 ‘부’의 성격에 대한 이해는 현재까지의 연구결과는 대략 ‘부체제론’과 ‘중앙집권체제론’의 두 가지 견해로 집약된다.
백제는 온조왕 17년을 전후하여 ‘國完民聚’의 변모된 국가로 거듭나게 된다. 이후 영역확대 과정에서 새로이 편입된 지역에 대한 적극적인 통치의 필요성이 제기됨에 따라 지방에 대한 상위통치조직으로서의 ‘부’를 편제하게 된다.
백제가 통치영역을 5부로 편제하기 이전 이들 지역에 대한 영유권 확보는 대체로 서부-동․북부-남부지역의 순서로 이루어졌다. 백제는 동․북부 세력에 대해서는 동일 종족이라는 인식 하에 말갈과 낙랑에 공동대처하다가 평화적으로 이들 세력을 공적 지배질서체제 내로 흡수․통합한 것으로 보이며, 간접적인 통제를 취하였다. 반면 미추홀세력과 마한세력은 이종족에 대한 무력정복의 결과로 나타난 것이며, 이들에 대하여는 직접지배를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백제의 초기 부제는 이원적 지배구조라는 한계를 가지고 있었으며, 이에 대한 극복은 고이왕대에 이르러서야 실현되는 것으로 보인다.
온조왕대의 ‘부’는 편제 당시부터 방위명을 띠며 행정편의를 위하여 중앙에서 임의로 편제한 행정․군사적 성격의 지방통치 조직이었다. 그러므로 백제의 부는 북방의 낙랑․말갈과의 전쟁에서 효율성을 담보하는 기능 외에도 영토확장과 인구증대 및 선진문화를 흡수하는 기능을 수행하였으며, 독립적인 세력기반을 지닌 지방세력에게 관직 수여 등을 통하여 공적 지배질서체제 내로 흡수, 그들 세력을 재편․통합함으로써 종속관계를 실현하게 된다. 또한 국가의 역사시 지방관의 파견과 아울러 필요인력의 징발을 위한 역역의 동원단위가 되었는데, 이는 결과적으로 중앙의 직접 통치를 실현시키면서 왕권강화의 기능을 수행하였다.
이 밖에도 부를 단위로 從民을 실시함으로써 종래의 공동체 구성원을 그들의 생산기반에서 분리시켜 국가의 지배를 관철시킬 수 있었으며, 또한 왕토사상에 대한 의식의 확대에 기여하고, 부에 대한 순무를 통하여 부와 부민에 대한 통치권이 국왕에게 있음을 확인시켜 줌으로써 국가의 영향력 확대를 도모하고 민의 국가에 대한 귀속의식을 갖도록 하였다. 따라서 백제는 부의 편제와 그 기능을 통하여 고대국가로 성장할 수 있었으며, 왕권의 강화를 지향할 수 있었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