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의 대중국관계는 위덕왕시대에 접어들면서 반도내에 조성된 국면이 대수공식관계를 보다 활성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게 되였다. 백제의 대수관계의 특색은 당시 반도내에서 삼국간에 얽힌 국제정치에 백제가 바라는 방향으로 전개되기보다는 수가 요통전략에 역이용할 가능성이 짙다. 백제의 대수관계는 그 외교의 군영상 자칫하면 능동성과 자주성을 잃게 될 수 있고 수가 제,라 사이에 조성된 사태의 추이에 따라 양자를 이용할 소지가 있을 수 있다. 백제측에서 수에 적극적 자세를 취하며 미래지향적이였다면 수는 현실적이며 관망적 태도를 지닌 감이 드는 것이다.
무왕 중기로 접어들면서 중국내 질서변화로 당의 등장을 맞게 되었다. 당질서의 형성은 동아의 정치질서권에도 매우 큰 영향력을 미쳤고 이러한 당세는 고구려를 제외하고도 제,라 양국에 각기 작용하였다. 더욱이 제라의 대당추이에 따라 당은 천자의 위치로 격상하면서 공적 명분으로 양국분쟁에 나서며 임의로 백제나 신라의 유용성을 활용할 수 있는 입장에 처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므로 백제는 수대에 비해 당의 영향력을 받아들이게 된 경향이 있고 이는 대당관계에서도 능동성이 약화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자연히 백제는 당의 세력을 받냐 마냐의 기로에 서 있게 되었다.
의자왕은 대중국공식관계에서 종래 범위에서 벗어나지 못하였고 고구려와의 연결은 려제가 동족이라는 본래로 환원된 느낌이 든다. 의자왕이 당의 고구려 침략 일차 목표가 되지 않도록 신라와 평행관계를 성립시켰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