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에서는 475년 고구려의 침입으로 인한 왕도 한성 함락과 개로왕의 패사 후 웅진으로 천도하게 된 경위를 살펴봄으로써 백제의 웅진천도 배경에 대해 살펴보았다. 특히 웅진이 갖는 지리적인 이점과 더불어 당시 백제의 지방지배체제였던 담로제와 결부시켜 이해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웅진시대의 한성 경영 문제에 대해서도 살펴보았다. 웅진시대의 한성 경영에 대해서는 기존의 통설과는 다른 시각에서 백제사에 대한 이해를 시도하였으며, 특히 『삼국사기』와 같은 문헌기록의 사료적 가치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논지를 전개하였다.
그 결과 웅진시대에도 한성은 국왕이 직접 순행하는 등 깊은 관심을 가지고 경영된 지역이었으며 백제가 계속해서 점유했던 지역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즉 웅진천도 이후 한성은 고구려가 점령하고 성왕대에 가서 백제가 회복하였다는 기존의 통설에 비판을 가한 것이다. 그리고 고구려 한성 점령설의 토대가 된 『일본서기』흠명천황 12년조 고구려로부터 회복한 한성 등 6군의 땅은 성왕 7년(529)에 고구려 안장왕에게 빼앗겼던 것을 성왕 29년(551)에 되찾을 것을 말하는 것으로 475년 장수왕에게 빼앗겼던 지역을 다시 회복한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웅진시대 백제의 북방경계가 아산만 이남의 충남 북부지역으로 후퇴했다는 기존의 설은 재고되어야 한다. 웅진시대 백제의 북경은 아산만 일대가 아니라 한강 이북지역이었으며, 황해도 지역까지도 진출하였던 것이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