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 성립 시기에 관한 북한 학계의 설을 소개하였다. 북한학계의 삼국 성립 시기에 관한 통설을 보았을 때, 몇 가지 특징적인 면을 찾아볼 수 있다. 첫째, 삼국의 건국 시기를, 특히 고구려를 올려 잡는 입장을 취하였다. 역사가 오래되고, 침략군을 물리쳐 외국의 지배를 받은 바 없었던 강성한 나라였음을 강조하였다. 이는 북한 역사학의 특징적인 요소인, 사회주의적 애국주의 강조와 연관된 것이라고 하겠다. 둘째, 삼국 건국과정을 논함에 외국과의 관계에 대한 논급이 매우 적다. 북한 역사학계의 기본적인 시각이 이 부분에서도 적용되어 있다. 셋째, 삼국 건국시기에 관한 현재의 북한 학계의 정설이 제기되는 과정과 그 이후의 논의를 살펴볼 때, 북한 학계가 고도로 중앙집권화되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남한 학계에선 여러 가지 서로 대립하는 설들이 병존하며, 장기간 논쟁을 벌이기도 한다. 그에 비해 북한 학계의 경우는 논문은 각 연구자 별로 발표되지만, 주요 기본 문제에 관해선 그 쪽 학계 나름의 이면적인 토론을 거쳐 제시되어지는 것 같다. 일단 제시되면 그 기본적인 틀과 상충되는 견해는 발표되지 않고 있다. 넷째, 북한학계의 삼국 건국 시기에 관한 설에서 보다 본질적인 문제는 이 설이 과연 실증적인 논거를 확보할 수 있는가이다. 고대사에 관한 문헌 사료가 워낙 적기 때문에 어떤 학설도 항시 논란의 여지를 많이 안고 있다. 그런 만큼 이 경우도 예외적인 것은 아니다. 특히 이 설은 영세한 문헌자료에 바탕을 두고 추론에 추론을 거듭하였기 때문에, 만약 하나의 전제가 흔들리면 연속해서 전체의 틀이 무너질 수도 있다. 고대사는 우리 민족의 가장 깊은 뿌리 부분의 역사이다. 그만큼 남북의 주민이 한 민족으로서의 정체성 정립에 있어서 지니는 상징적인 의미는 매우 크다. 그런데 우리 역사에 관한 논의에서 고대사 분야는 근․현대사 분야와 함께 남북한 학계 간 가장 견해의 차이가 큰 부분이다. 서로가 마음을 열고 논의를 교환하고, 함께 조사하고 연구해 나간다면, 양쪽 학간 의견의 차이를 좁혀나가 보다 풍부하고 합리적인 고대사체계를 세워나갈 수 있을 것이다. (연구원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