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머리말
II. 제설의 검토
III. 백제국의 성장과 원거리 교역의 성립
IV. 마한 연맹체의 해체와 중국의 백제책봉
V. 맺음말
요약
백제가 연맹왕국에서 중앙집권적 귀족국가로 성장하는 데에는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 요인 등의 대내적인 요인 이외에 대외적인 측면인 대외교섭도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하였다. 즉, 내부적 통합과 함께 대외교섭권을 서서히 장악함으로써 연맹왕국에서 귀족국가로 발전할 수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 과정을 요약하자면 아래와 같다. 백제는 기리영전투 이후 연맹왕국을 형성하였는데, 이전의 군현외교와는 달리 중국과 원거리교역이라는 직접적인 외교를 추진하였으며 이를 통하여 백제는 마한연맹체의 맹주국으로 부상할 수 있었다. 또한 이후 백제는 서진과의 활발한 외교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그것이 동이교위를 통해서 이루어졌다든지, 마한이란 국호로서 교섭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에서 엿볼 수 있듯이 백제의 대외교섭권의 장악에는 일정한 제약이 있었다.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3세기말 4세기초에 전개된 국제관계는 백제의 대외교섭에 새로운 변화를 낳게 하였다. 백제는 이러한 외교상황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 근초고왕대에 국가체제의 정비를 추진하여 귀족국가의 성립으로 귀결되었다. 이후 백제는 마한연맹체의 해체에 본격적으로 들어갔는데, 외교활동과 군사 활동의 두 가지 방면에서 이루어졌다. 360년대 중반 이후 신라, 가야, 왜와의 우호관계를 맺으면서 영산강유역의 마한사회를 군사적으로 병합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백제의 국가적 성장은 국호변경을 통해서 상징적으로 표현되었다. 그것은 대내적으로 마한 연맹체의 해체를 성공적으로 이루었다는 사실과 함께 대외적으로 백제가 이제 동아시아의 국제질서의 개편에 중요한 변수로 작용함을 알려주는 것이었다. 이러한 변화는 근초고왕대 동진의 백제 책봉으로 구체화되었다. 이것은 동이교위를 통하여 추진되던 기존의 외교와는 크게 다른 것이었다. 귀족국가의 성립과 함께 백제의 대외교섭권장악이 실질적으로 이루어졌음을 알려주는 것이었다. (필자 요약)